1000원짜리 팔아 1억원 기부
"내가 꾸는 꿈에 부자는 없어…사람들에게 희망 주고 싶어" '
서울 안암동 고려대 정경대학 후문에 자리 잡은 햄버거 가게인 영철버거. 자신의 이름을 딴 한국형 수제 햄버거로 인기를 끈 이영철 영철버거 대표(45·사진)는 이제 ‘성공 CEO(최고경영자)’ 반열에 올랐지만 고려대 학생들 사이엔 여전히 ‘영철형님’ ‘영철이형’으로 통한다.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상경해 생존 차원에서 닥치는 대로 일해야 했지만 최근 10년간 1억원이 넘는 장학금을 기부했다. 역경을 이겨낸 그의 성공스토리는 강의실 밖 멘토강사로 인정받는 밑거름이 됐다. 지난 20일 서울 회기동 경희대에서 ‘꿈멘토링 특강’에 나선 이 대표를 만났다.
“전남 해남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어요. 폐결핵으로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 그저 삼시세끼 챙겨먹을 수 있을까 싶어서 올라왔죠.” 1979년 액세서리 공장부터 중국집, 군복 생산업체 등을 전전하던 이 대표는 빨리 돈을 벌어 자리를 잡고 싶은 마음에 벽돌공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어깨와 허리를 다쳐 그만둬야 했다. 1999년 수중에 있는 2만2000원에 빌린 돈을 보태 노점을 시작했다. 그는 당시 주변 텃세와 단속 탓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고 했다.
“용두동에서 분식을 팔았는데 하루 1만원도 남지 않았어요. 면목동으로 옮겼다가 보름 만에 주변 상인들에게 쫓겨나고 결국 2000년 가을 안암동 고려대 후문에서 햄버거 노점으로 자리를 잡았어요.”
이 대표는 1000원으로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스트리트(거리) 버거’가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받은 사랑을 되돌려줘야겠다는 생각으로 기부를 시작했고 2004년부터 고려대에 기부한 금액이 1억원이 넘어섰다.
“천대받고 외롭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어요. 그런 삶 속에서 내가 훌륭하게 생각하는 지성인들이 나를 사랑해주니 얼마나 고마웠겠어요. 학생들 덕분에 돈을 벌었기 때문에 기부를 하게 된 겁니다.”
고려대 명물이 된 영철버거였지만 2008년 위기가 찾아왔다. 원재료 값이 올라 1000원으로는 수지를 맞출 수 없게 된 것. 1000원은 영철버거의 상징과도 같았기에 고민이었다. “지쳐서 그만둘 생각도 했지만 졸업한 고려대 동생들이 ‘지금 그만두면 도망갔다고 생각할 것이다’란 말에 이겨내기로 했습니다.”
가격을 1500원으로 올리자 예상대로 매출이 급감했지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준 것도 고려대와 학생들이었다. 이기수 고려대 총장이 2010년 졸업식과 입학식 때 영철버거 1만개를 주문한 것. 이 대표는 “학교에서 햄버거 주문만 한 것이 아니라 2000만원이 넘는 위생컨설팅까지 같이 해줘 다시 일어서는 힘이 됐다”고 말했다. 이후 영철버거는 고급화 전략으로 4000~6000원대의 수제버거를 팔고 있다.
“이제 제가 꿈꾸는 건 부를 얻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생입니다. 아프지 않고 얻은 성취는 모래성이에요. 이미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교과서일 뿐이니 몸으로 부딪쳐봐야 합니다.”
강연을 들은 정유라 씨(23·경희대 무용학부 3학년)는 “성공한 사람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번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강연을 들으니 진정한 행복을 찾고 그것을 다시 나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이번 특강은 신동일꿈발전소 꿈멘토링 프로그램의 하나로 진행됐다. 꿈멘토링은 자신의 노하우와 스토리로 부자가 된 사람들을 소개하는 자리로 내달엔 박이빛 코리아미디어그룹 대표 강연, 9월에는 이재춘 한국에이엔디 대표의 강연이 예정돼 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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