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 맞춤과정' 1기 졸업생 절반 이상 SKY 합격
지금의 대입은 고입에서 결정됩니다. 어느 대학에 합격하느냐에 앞서 어떤 고교에 진학하느냐가 학생과 학부모들의 관심사가 됐습니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개별 고교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이에 한경닷컴은 국내 유수 명문고들의 우수 커리큘럼과 다양한 교육과정을 소개하는 ‘나는 명문고다’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일반계 고교뿐 아니라 자율형사립고 과학고 외국어고 국제고 영재학교 등 다양한 학교에 대한 기사가 진로?교육 문제로 고민하는 독자 여러분들을 찾아갑니다. <편집자 주>
서울 은평구 하나고는 2010년 개교 때부터 유명세를 탔다. 하나금융그룹이 재단으로 있는 서울의 유일한 전국단위 선발 자사고로 주목받았다. 사교육 없는 전인교육·자기주도학습이란 새로운 교육모델을 내세웠지만, 연간 학비 1000만 원이 넘는 '귀족학교'란 비판도 적지 않았다.
올해 첫 졸업생을 배출하자 반응은 확연히 달라졌다.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합격 인원만 1기 졸업생 200명의 절반이 넘었다. 해외 유명대와 KAIST·포스텍(포항공대) 입학 케이스까지 합치면 대부분 학생이 명문대 진학에 성공했다.
단순히 입시 성적이 좋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아니다. 확실한 롤모델을 만들어 성공한 점이 높은 점수를 얻었다. 우수학생을 선발, 수시 맞춤형 교육과정을 운영해 뛰어난 성과를 냈다. 전교생 기숙사 생활, 무계열·무학년제, 1인2기 교육 등의 자기 색깔을 드러낸 결과물이다.
◆ 실력 따라 소규모 심화·토론수업… 우수 교사진도 자산
하나고의 교육 프로그램은 입시용이 아닌 점이 더 큰 입시 성과를 거뒀다. 고명찬 하나고 진학지원실장은 "대입을 떠나서 '다양한 교육과정을 설계해 전인교육을 하자'는 운영철학을 십분 반영했다"며 "초반엔 학부모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원칙으로 삼은 1인2기 교육, 국제심포지엄 개최 같은 시도를 통해 결과적으로 학교교육 자체가 달라졌다"고 자평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독특한 하나고의 교육시스템을 대학들도 외면할 수 없었다. 기존의 주입식, 문제풀이 교육이 아닌 하나고만의 차별화된 시도가 통한 것이다.
고 실장은 "하나고의 여건이 좋아 일반계 고교보다 입시 성적이 좋았다는 얘기에는 공감할 수 없다"며 "수업 설계를 어떻게 하느냐, 얼마나 수행평가를 정교화 하느냐 등 교사의 노력에 따라 학생들의 생활기록부 자체가 달라진다"고 꼬집었다. 그는 "하나고는 확실한 교육방침에다 우수학생들, 의지가 있고 성실한 교사들이 합쳐져 성과를 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홈페이지에 교사들의 약력을 모두 공개한 것도 눈길을 끈다. SKY 출신에 특목고, 유명 입시학원 근무 경력 등 면면이 화려하다. 우수 교사진의 교육 품질이 보증됐다. 또 하나, 대학 입학사정관 출신 교사들이 포진돼 있는 것도 강점이다. 학생들을 입학사정관전형 등 다양한 요소로 선발하는 수시 전형에 초점을 맞춰 가르치는 데 특화돼 있다는 평이다.
소규모 밀착 진학지도 역시 가능하다. 하나고의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11.2명으로 서울 평균(15.8명)보다 훨씬 적다. 우수 교사들이 확실한 방향성을 갖고 심화·토론수업과 개인별 밀착지도에 나서니 성과는 자연히 따라왔다.
◆ 인문계보다 자연계가 많아… 커리큘럼·대입전형 맞물려
지난 대입에서 하나고의 서울대 수시모집 합격자(재학생 기준) 44명은 전국단위 선발 자사고 중 1위였다. 민족사관고(37명) 포항제철고 (25명) 상산고(23명) 현대청운고(18명) 등을 앞질렀다. 특히 하나고는 첫 입시에서 인문계보다 자연계에 강세를 보였다. 44명 가운데 32명이 자연계 합격생이었다.
이에 대해 메가스터디 김기한 교육연구소장은 "과학고가 영재학교로 전환한 케이스가 많아 그 학생들이 특기자전형을 선호한 반면 서울대는 일반전형과 자연계열 모집단위 비중을 높였다"며 "실험수업 등 자연계에 강점이 있는 하나고가 일반전형을 잘 공략해 서울대 합격자 수에서 약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나고 측의 설명은 조금 다르다. 인문계 학생 90여 명 중 12명이 서울대 수시모집에 합격한 것은 비율로는 높은 편. 숫자로 따지다 보니 생긴 착시효과란 것이다. 고 실장은 "재수생 제외 재학생 기준 합격률로 따지면 대원외고보다도 높다"며 "자연계는 KAIST?포스텍이나 의?치?한의예 계열에 지원하는 경우도 많아 인문계에 비해 문이 넓은 것도 영향을 끼쳤다"고 강조했다.
하나고의 탄탄한 투자가 효과를 봤다. 학교 측에 따르면 학생 1인당 투입 교육비는 2753만 원. 국내 고교 중 최고로 학비의 2배 이상을 되돌려주는 셈이다. 차액은 재단에서 지원해 값비싼 기자재를 들여오고 실험실습도 대학 수준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줬다. 면접·토론식 수업 등 하나고의 뚝심 있는 교육실험이 제대로 먹혀든 것이다.
앞으로의 전망도 밝다. 대입 관계자들이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어서다. 한 서울 명문대 입학 관계자는 "성적만 좋은 게 아니라 고교시절 다양한 실험실습과 심화학습을 해 대학에 와서도 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연계 신입생들의 수학·과학 기초지식이 부족해 대학에서 가르치는 경우도 있는데, 전공적합성과 발전가능성이 뛰어난 이런 학생들을 뽑게 된다"고 귀띔했다.
◆ '내신 불리' 불안감 떨치고 특색·우수 인재 승부수 주효
하나고가 지향하는 모델은 영국의 명문 이튼칼리지다. 이튼칼리지는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며 인문학·자연과학 경계 없이 다양한 교과목을 배운다. 예술·체육 활동도 필수적이다. 전인교육이 가능한 기숙형 교육모델 '레지덴셜 칼리지' 프로그램은 국내에선 연세대 한국뉴욕주립대 이화여대(예정) 등이 시행 또는 계획하고 있다. 하나고가 유명 대학들에 앞서 실행한 셈이다.
알려진 대로 교육비는 다소 비싼 편이다. 연간 수업료와 입학금 등 학비가 550만 원, 기숙사?급식비 550만 원 등 1100만 원 정도다. 개인별 신청 방과후 수업료는 별도다. 김성해 하나고 기획홍보실장은 "하나고는 전원 기숙사 생활로 사교육비가 일체 들지 않기 때문에 일반 고교와 단순 비교해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핵심은 사교육 없이 학교생활만으로 승부한다는 것. 무계열·무학년제 운영이 기본틀이다. 하나고 학생들은 진로와 적성에 맞춰 자신이 원하는 교과목을 선택, 개인별 시간표에 따라 움직인다. 수업 인원 수도 다르고 진행·평가 방식도 모두 다르다. 수업은 수요조사를 실시해 학생들 의견을 반영해 개설된다.
예술·체육을 반드시 함께 하는 1인2기 제도도 특색 있다. 1시간30분씩 주4회 1인2기 활동을 갖는다. 가야금 색소폰 바이올린(음악) 사진 서양화 금속공예(미술) 검도 요가 배드민턴(체육) 등 다양한 교과목이 개설돼 있다. 입시와 무관해 처음엔 학부모의 우려가 컸다. 그러나 학생부 자기소개서 교사추천서 면접 등 여러 요소를 평가하는 수시에서 성과를 냈다.
하나고 학생들은 학교를 졸업하려면 독서 외국어 1인2기 수영 봉사의 5가지 인증제도를 통과해야 한다. 최근 대학들이 강조하는 인성교육을 비롯한 각종 인증제를 미리 체험 가능한 셈이다. 서강대 등 주요 대학이 최근 예체능 관련 평가를 중시하는 것도 좋은 영향을 끼쳤다.
[입시전문가가 본 하나고 강점]
우수 인풋 확보, 대학들도 맞춤형 전형 마련
하나고의 강점은 우선 우수한 인풋에서 비롯된다. 전국단위 선발 자사고란 자체가 장점이다. 외국어고·과학고 등 특목고는 지역제한이 있는 반면, 하나고는 전국 각지 우수학생들이 들어올 수 있는 여건이 된다. 재단으로 있는 하나금융그룹의 전폭 지원도 큰 자산이다.
이투스청솔 교육평가연구소 오종운 평가이사는 "하나고는 지역제한이 있는 특목고에 비해 선발권 재량이 크다"며 "특정 과목에 초점을 맞춰 선발하는 외고나 국제고, 과학고에 비해 자사고는 서류평가에서 주요과목 내신을 반영해 1단계 선발을 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우수한 학생을 뽑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전국단위 모집 자사고 가운데 유일하게 서울에 위치한 점도 비교우위를 갖는다. 학생·학부모 이목이 집중되고 우수자원도 몰려 있기 때문이다. 오 이사는 "기숙사 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서울 소재 자사고란 것은 엄청난 이점"이라며 "민족사관고에 비해 확실히 학생이나 학부모들의 관심이 높다"고 덧붙였다.
진학사 김희동 입시전략연구소장도 "전국단위 선발은 지역제한이 있는 특목고에 비해 아무래도 자원에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하나고는 입학자원이 우수한 데다 면접이나 토론식 수업, 실험실습 등의 교육환경이 대학 수준으로 잘 갖춰져 있다"며 "무계열·무학년제 등으로 학생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다 보니 동기 부여가 되고 성적도 향상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들도 자사고나 특목고의 우수학생을 뽑기 위해 이들에게 유리한 전형을 마련하고 있다. 입학사정관제를 비롯한 다양한 수시 전형들이 그것이다.
메가스터디 김기한 교육연구소장은 "SKY 등 명문대의 최근 전형요강을 자세히 살펴보면 자사고나 특목고 학생들이 들어가기에 알맞은 전형들이 상당히 많다"며 "일반 고교에서 시도하기 어려운 내용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 입시에서도 강세를 보이는 것"이라고 전했다.
김 소장은 또 "하나고에는 대학 입학사정관이나 유명 입시학원 출신 교사들이 많다"며 "교사들이 맞춤형 지도를 잘해 수시에 강점을 보였는데, 결과적으로 신흥 명문으로 자리 잡기 위한 노력이 효과를 본 것"이라고 말했다.
오 이사도 "수시 입학사정관제 등이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전공적합성 같은 요소에서 하나고의 교육과정이 대학의 요구를 충족시켰다"고 평했다. 그는 "하나고 학생들은 천편일률적 고교 과정을 탈피해 1인2기 활동이나 자신이 선택해 수업을 들었다"며 "다양한 수시 전형에서 요구하는 특색 있고 다양한 '스토리'에 부합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나고 입학 이렇게 준비하라]
자기주도학습전형 선발… 자기개발계획·심층면접 핵심
하나고에 입학하려면 내신 관리도 중요하지만 자기주도적 학습능력과 창의력이 가장 중요하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 어필해야 선발될 수 있다.
하나고의 한해 선발 모집정원은 200명이다. 크게 일반전형, 사회통합전형, 하나임직원자녀전형의 3가지 전형으로 나뉜다. 일반전형으로 60%를 선발하고 사회통합전형, 하나임직원자녀전형을 통해 각각 20%씩 뽑는다.
일반전형은 서울 거주 또는 서울 소재 중학교 졸업(예정)자에 한해 지원할 수 있다. 다만 청심국제중 등 타 지역 특성화중 졸업예정자도 서울에 거주할 경우 지원 가능하다. 이와 함께 서초·강남·송파구의 강남 3구 거주자는 전체 정원의 20%를 넘을 수 없도록 했다. 하나임직원자녀전형의 경우 지역제한이 없다.
지원자격에는 특별한 제한이 없다. 일반전형 기준 제출 서류는 입학원서, 교사추천서, 내신산출결과표, 생활기록부 등이다. 시험이나 특별한 제출 서류도 없다. 배점 비율로는 교과 성적이 50%로 가장 높다. 하나고에는 전국 상위 5% 내외 학생들이 입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고는 2단계에 걸쳐 '자기주도학습전형'으로 학생들을 뽑는다. 1단계 서류전형에서 내신(50점)과 교과 외 성적(10점), 자기개발계획서·추천서(20점)로 2배수를 선발한다. 2단계에선 심층면접(20점)과 체력검사가 치러진다.
자기주도학습전형으로 뽑는 만큼 다양한 경험과 활동을 잘 풀어내는 게 중요하다. 이런 내용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자기개발계획서와 심층면접. 내신의 비중이 높지만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이 지원하므로 면접과 자기개발계획 부문에서 자신을 어필해야 한다. 경험이나 사례의 나열보다 자신의 진로, 꿈과 잘 연결해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면 합격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김성해 하나고 기획홍보실장은 "자기주도학습능력, 창의력을 중시하는 것 외에도 전원 기숙사생활을 하며 체육이 강조되는 학교다 보니 강인한 체력과 인성, 자질을 보여줄 수 있도록 준비해할 필요가 있다"며 "스스로의 열정을 통해 이뤄낸 스토리를 가진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의욕적인 학생을 원하는 만큼 이런 점을 자기개발계획서에 충분히 부각시켜라"고 조언했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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