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0억 가짜석유, 단속공무원·경찰도 '한통속'

입력 2013-07-22 17:22   수정 2013-07-23 05:17

檢, 유통사범 32명 적발

석유관리원 단속정보 흘려 수억씩 뇌물 받고 투자까지
경찰은 수배내역 알려주고 세무공무원은 조사 무마




국내 1위 솔벤트 생산업체인 C사가 수백억원어치의 가짜 석유를 유통시키다 검찰에 적발됐다. 가짜 석유를 단속해야 할 한국석유관리원 전·현직 간부들과 경찰, 세무공무원들은 장기간 단속 정보 등을 빼돌려 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구조적인 비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가짜 석유 주도 국내 1위 솔벤트 업체

대전지검 천안지청 형사2부(부장검사 한웅재)는 940억원 상당의 가짜 석유를 제조·유통시킨 사범과 이를 비호한 공무원 등 모두 32명을 적발, 이 중 14명을 구속기소했다고 22일 발표했다.

한웅재 부장은 “석유정제회사가 개별 가짜 경유 제조업자들에게 조직적으로 원료를 공급해온 사실을 적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용의자들은 경유와 성질이 흡사한 용제에 대해 다른 석유제품과 달리 유류세 등 세금이 전혀 붙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 진짜 경유와 섞어 가짜 경유를 만들어 팔았다. 석유정제회사인 C사 회장 K씨는 2010~2012년 용제 1747만ℓ(시가 209억원어치)를 특수 관계에 있는 특장회사 탱크로리를 통해 가짜 석유 제조업자에게 공급한 혐의(석유사업법 위반)로 구속기소됐다. C사는 지난 5년간 솔벤트 생산과 유통량에서 국내 1위를 차지한 회사로 조사됐다.

◆단속 공무원들도 대거 가담

검찰 조사 결과 국가로부터 가짜 석유 유통단속 권한을 위임받은 한국석유관리원 간부들이 대거 비리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석유관리원의 감사실장, 전북본부장, 전 서울지사장, 경기북부본부 과장 등 핵심 보직자들은 브로커로부터 단속 정보를 빼돌린 대가로 1인당 2000만~2억1000만원의 뇌물을 챙겼다. 브로커들은 가짜 석유 판매업자들로부터 매월 일정액을 수금해 이들에게 일부를 상납했다. 검찰은 용제 원재료(HCGO)를 공급한 정유회사에는 경고장을 보냈다. 시장 규모에 비해 상식을 벗어나는 막대한 양의 용제 원재료 공급 행위를 자제해 달라는 권고다.

검은 사슬에는 경찰과 세무공무원도 가세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의 한 경사는 ‘가짜 석유 판매에 방해되는 사람들을 구속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브로커로부터 청부 수사 대가로 1400만원을 받았고, 전직 경찰서 경감은 수배 내역을 조회해 알려주는 방법으로 지명수배 브로커의 도피를 도왔다.

석유관리원의 한 간부는 단속 경찰관과 함께 가짜 석유 판매업자가 운영하는 주유소에 거액을 투자하기도 했다. 세무공무원 4명은 세무조사 무마 명목으로 석유정제회사로부터 수백만원씩의 금품을 받았다.

◆용제에 세금부과 등 제도 개선 필요

검찰은 “가짜 석유 유통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면 법령 정비 및 세제 개편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솔벤트가 가짜 경유의 원료로 사용되는 이유는 경유와 성분은 비슷한데도 세금이 부과되지 않아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검찰은 솔벤트에 세금을 먼저 부과하고 최종 소비자가 산업용으로 사용한 사실을 소명하는 경우 환급해주는 제도 개선안(가칭 유류세 납부 후 환급제도)을 기획재정부에 건의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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