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건립 허용·불허 기준도 '들쭉날쭉'
업계 "공무원들, 러브호텔로 인식" 분통
부동산 개발사업자 K씨는 지난해부터 서울 당산동에 비즈니스호텔 건설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업지에서 100m가량 떨어진 곳에 초등학교가 있지만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 등의 자문을 받고 학교 위생과 면학 분위기를 해치지 않을 것으로 판단, 사업을 추진했다. 비즈니스호텔 운영업체인 B사와 협약을 맺고 인근 주민들과 학교장의 동의서까지 받아 서울남부교육청에 허가를 신청했지만 불허 판정을 받았다. 해당 교육청에 수차례 질의했으나 “심의위원회가 종합적으로 판단했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결국 A씨는 해당 교육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에서 관할 교육청의 허가를 받지 못해 신축사업이 중단되는 관광호텔이 늘어나고 있다. 사업자들은 사업 조건이 유사한데도 심의 결과가 제각각으로 나오는 등 교육청의 심의 기준이 지나치게 자의적이라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교육청의 호텔신축 불허사례가 급증하면서 서울지역 숙박시설 부족난 장기화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유흥주점은 ‘허용’, 관광호텔은 ‘불허’
호텔 건축 불가의 이면에는 교육청의 심의기준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 시내 교육청들의 환경위생정화구역(학교 반경 200m 이내) 심의 결과를 살펴보면 동일한 교육청이 학교에 더 가까운 관광호텔은 허가한 반면 더 먼 관광호텔은 불허했고, 학교와 떨어진 관광호텔은 불허했지만 학교와 더 가까운 유흥주점은 허용한 경우도 있어서다. 일부 교육청들은 건축허가 심의 과정에서 여관을 허가하면서도 호텔에 대해서는 ‘낮시간 대실(貸室)영업 등 풍기문란 행위가 이뤄지고 유흥업소도 따라 들어올 우려가 있다’는 점을 불허이유로 삼는 등 ‘허가기준’이 제각각이다.
서울중부교육청은 최근 효제초교와 67m 떨어진 종로구 효제동의 한 유흥주점 허가를 내준 반면 지난 4월 광희초교와 108m 떨어진 중구 흥인동의 관광호텔에 대해서는 불허 처분을 내렸다.
앞서 서울중부교육청은 1월에는 교동초교와 78m 거리에 있는 종로구 익선동의 여관에 대해 허가 결정을 내렸다. 관광호텔 건립은 막았지만 관광호텔보다 교육환경을 침해할 가능성이 더 높은 유흥주점과 여관은 허용한 것이다.
해당 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와의 거리만 고려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유사사례 등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며 “현재 주변 지역이 어떤 상황인지도 참작했기 때문에 심의에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최근에는 외국인 관광객의 증가로 유흥주점과 같은 업소가 없는 비즈니스호텔과 유스호스텔 등의 영업이 대부분이다. 관광호텔사업체인 B사 상무는 “공무원들이 아직도 비즈니스호텔을 러브호텔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며 “대실영업을 하는 관광호텔은 없으며, 유흥주점은 별도로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정소송을 제기한 A씨도 “외국인 관광객이 학생의 위생이나 교육환경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구체적 자료와 내용이 없는 상황에서 막연히 그럴 수 있다는 가정만으로 허가를 내주지 않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호텔 부족으로 주거건물 편법 영업까지 등장
서울시는 올해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을 고려할 때 1만5791실의 숙박시설이 부족할 것으로 추산했다. 때문에 서울시는 올해 3만3124실, 내년 3만9254실 등 지속적으로 관광호텔 객실을 늘릴 계획이다. 그러나 교육청 인허가 과정에서 절반 가까운 사업이 무산될 위기여서 객실 수급 계획이 큰 차질을 빚게 됐다.
서울시 등에 따르면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의 71.6%는 숙박시설로 호텔을 선호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특별법에 따라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면서 관광호텔 신축을 장려해도 서울시의 숙박시설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객실난으로 도시형 생활주택과 오피스텔로 건축 허가를 받은 뒤 숙박업소인 ‘서비스드 레지던스’로 운영하는 편법영업이 성행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서울 도심 일부에서는 현재 호텔이 들어설 수 없는 학교 주변 50m 이내 ‘절대적 정화구역’에서 일부 오피스텔 등이 레지던스로 운영되는 실정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종로구와 중구 등 서울 도심 곳곳에 각급 학교들이 있기 때문에 학교 주변 정화구역을 제외하면 관광호텔을 지을 땅이 별로 없다”며 “관광호텔을 모텔·여인숙과 동급으로 취급해 까다롭게 심사한다면 오히려 불법영업이 증가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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