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은 러시아 침공에 실패한 원인을 추운 날씨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당시 날씨는 춥기는커녕 따뜻하기만 했다. 그는 늘 국민을 위해 전쟁에 나선다고 했지만 전황을 수시로 조작하고 가짜 실적을 보고했다. 로마 황제 네로는 로마가 불타오를 때 바이올린을 켠 정신이상자로 묘사됐지만, 실은 시민을 구하러 직접 현장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게다가 바이올린은 그로부터 1500년 뒤에야 발명됐다.
거짓말은 인간 역사의 많은 부분을 왜곡시키고 진실을 은폐하는 도구로 쓰였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서 하는 말’이기 때문에 조그만 사실이라도 밝혀지면 이를 감추기 위해 더 많은 거짓말을 해야 한다. ‘터무니없는’ ‘새빨간’ 말을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하는 것이다.
‘살기 위해 필요한’(니체) 선의의 거짓말도 있지만, 문제는 ‘저주받은 악’(몽테뉴)의 치명적인 피해다. 정치인들의 거짓말에 위선과 모욕, 위협까지 얽힐 땐 파장이 걷잡을 수 없다. 국회의 싸움이 격해질수록 사회의 이념적 골이 깊어지고 그 골 사이에서 인터넷의 진흙탕 싸움도 치열해진다.
날마다 이런 꼴을 보고 사니 국민들도 전염될 수밖에 없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고소ㆍ고발을 당한 인원은 지난해 67만7039명에 달했다. 인구 100명 중 한 명 이상으로, 일본의 0.005%보다 260배나 많다. 이 가운데 50만명 정도가 사기와 위증·무고 등 ‘거짓말 범죄’로 입건됐다. 특히 죄 없는 사람을 죄 있다고 관청에 고소하는 무고는 2011년 2325건으로 5년 전(1831건)보다 27%나 급증했다. 거짓진술하는 위증 역시 2010년 2025건에서 지난해 2282건으로 늘었다. ‘아는 사람’의 청탁이나 인간관계 때문에 법정에서조차 거짓말을 한다.
거짓증언의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인정과 의리를 중시하는 한국적 정서를 꼽는다. 신에 대한 선서나 서약위반을 중대 범죄로 보는 기독교적 전통의 영미권 국가와 달리 아는 사람을 위해서는 쉽게 거짓증언을 한다는 것이다. 혈연이나 지연, 학연으로 얽힌 연고사회의 빗나간 자화상이다. 개인주의와 실용주의를 중시하는 서구에서는 모욕이나 거짓말에 결투 등 직접적으로 대응하지만 유교적 집단주의 사회는 참말이든 거짓말이든 말을 앞세워 싸우다 보니 거짓말이 많아졌다는 설명도 있다.
국회의원의 막말과 거짓말 등을 금지하는 국회법 개정안 발의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거짓말 전염병이 말끔히 치유되길 기대해본다.《역사의 종말》을 쓴 프랜시스 후쿠야마도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결핍되면 선진사회에 진입하기 어렵다”고 하지 않았나.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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