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보유 원성 샀던 애플 2분기 또 늘려
“구두쇠 애플은 우울증 걸린 할머니 같다.”
올초 미국 헤지펀드계 거물이자 애플 주주인 데이비드 아이혼 그린라이트캐피털 회장이 애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던진 말이다. 애플이 엄청난 현금을 쌓아두고도 주주들에게 적정한 이익을 배당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너무 많은 현금 보유액 때문에 주주들로부터 원성을 샀던 애플이 2분기에도 현금 보유액을 늘렸다. 애플의 2분기 현금 보유액은 1466억달러로 전 분기 대비 1%, 전년 동기 대비 25%나 늘었다.
애플뿐만 아니다. 미국 기업들이 다시 현금을 쌓아두기 시작했다. 미 중앙은행(Fed)이 양적완화 등 경기부양책을 조만간 줄이거나 끝낼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9일(현지시간) 기업들이 지난해 경기회복 기대감으로 잠시 풀었던 현금줄을 다시 죄고 있다고 미국 금융전문가협회(AFP)의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해 보도했다.
AFP에 따르면 주요 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 대부분이 올 3분기 말에 지금보다 더 많은 현금을 갖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AFP에 속한 기업의 연평균 매출은 15억달러(약 1조6672억원)다. 설문에 참여한 CFO들은 Fed의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 때문에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응답했다.
Fed는 지난해 9월부터 매달 850억달러 규모의 국채와 주택담보부채권(MBS)을 사들이는 3차 양적완화를 시행하고 있다. 최근 벤 버냉키 Fed 의장은 미국의 경제 여건이 좋아지면 연내 양적완화를 축소, 내년 중반쯤 중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업들은 장기 투자를 꺼리는 모습이다. WSJ는 “Fed가 경기부양책을 중단하면 시중에 공급되던 유동성이 끊길 것을 우려, 기업들이 인수합병(M&A)은 물론 설비투자와 신규 고용까지 모두 망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최근 미국 주요 기업 CFO를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올해 M&A 계획이 있다는 응답은 16%로 6개월 전 같은 조사 때의 22%보다 크게 줄었다.
양적완화 축소와 중단 우려는 이미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을 반영하는 회사채 수익률을 끌어올리고 있다. 바클레이즈의 미국 투자적격 기업 회사채 수익률 지수는 지난 5월 초 사상 최저인 2.58%에서 지난 주말 3.22%로 뛰었다. 이 여파로 AFP가 내는 기업 현금 지수는 지난 4월 말 10에서 이달에는 12로 올랐다. 지수가 높을수록 현금 보유 비중이 늘었다는 뜻이다.
기업의 현금 보유액이 늘면서 은행들은 예금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씨티그룹, JP모건체이스, 웰스파고 등 대형은행은 올 2분기 기업 예금이 전년 동기 대비 7% 늘었다고 밝혔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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