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중소기업청의 '직무유기'

입력 2013-07-31 18:16   수정 2013-07-31 21:25

박수진 중소기업부 차장 psj@hankyung.com


중소기업계를 취재하면서 듣기에 불쾌하고, 쓰기에 거북스러운 기사가 있다. 벌써 몇 년째 끌고 있는 ‘소상공인연합회’ 설립 건이다. 소상공인을 대변할 법정 대표단체를 만들자는 ‘아름다운’ 구호 아래 온갖 비상식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부적절’ 지적을 받는 인물들이 단체 설립에 나서고 있고,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중소기업청은 엉성한 일처리로 비판을 받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당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처럼 큰 변화에 소상공인들이 대표단체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대응하게 하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얘기가 나오자마자 단체 설립에 관한 법적 근거(소기업 및 소상공인 지원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가 마련됐고, 곧이어 구체적인 설립 요건(시행규칙)까지 공포됐다.

부적절한 인물들이 설립 주도

전광석화 같은 조치다. 그러나 아름다운 일은 거기까지다. 시행규칙이 공포된 지난해 7월 이후 1년간 들려 온 소식은 모두 듣고 싶지 않은 것들뿐이다. 연합회를 설립하겠다는 사람들의 면면부터 그렇다. 연합회 설립을 주도했던 김모씨(전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는 자신이 속해 있던 전국단체의 회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적법한 등록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혐의로 당선무효소송에 제소돼 최근 패소했다. 또 중기청 조사 결과 3억2000만원의 정부 예산을 횡령·유용한 혐의로 경찰에 고발 조치됐다. 그의 경쟁자인 오모씨는 전국 2만여개 단란주점과 룸살롱 등을 대표하는 유흥음식업중앙회 회장이다.

두 사람은 대표단체 수장 자리를 놓고 그동안 진흙탕 싸움을 벌여왔다. 그 자리가 사업체 수로 283만여개(2011년기준), 종사자 수로 555만여명에 달하는 소상공인을 대표할 수 있는 데다, 정치적으로도 막강한 파워를 발휘할 수 있어서다. 이들은 조직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흑색선전을 벌였고, 상대 조직 매수도 서슴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과연 이런 사람들이 업계를 대변할 수 있겠느냐”는 비판 여론이 나올 정도다.

그러자 이번엔 김씨 밑에서 연합회 설립 실무작업을 하던 최모씨가 자신이 정통성 있는 단체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는 중기중앙회가 소상공인 조직을 붙잡아 두기 위해 뒤에서 밀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결과적으로 세 사람 모두 도덕성이나 적격성을 둘러싼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면면이다.

중기청은 시장혼란 수수방관

이들이 대표단체 설립을 놓고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고 있는 동안 업계에서는 남양유업 사태와 같은 소상인 피해 사례가 터졌고, 서비스업 적합업종 선정 같은 민감한 현안도 진행됐다. 그러나 업계는 제대로 된 성명서 한 장 내놓지 못했다.

일이 이렇게 된 데는 주무 부처인 중기청 책임이 크다. 중기청은 연합회 설립규정(시행규칙)을 어설프게 만들어 유흥업자들까지 단체 설립에 나서게 만들었다. 시행규칙에는 연합회 정회원에 대한 자격 요건이 없어 누구나 ‘세(勢)’를 앞세워 나설 수 있게 돼 있다.

중기청은 또 법 개정 후 지난 2년 동안 담당 사무관을 3명이나 교체했다. 담당 국장과 과장도 모두 갈았다. 그러면서 “(업계가 스스로) 통합 단체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소상공인 정책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 목표인 ‘중산층 복원’을 위해 중요한 대목이다. 소상공인 대표단체 설립 문제는 그 정책 실현 과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법이다. 한정화 중기청장이 지금이라도 소상공인 정책에 관심을 갖고 현안들을 꼼꼼히 챙겼으면 한다.

박수진 중소기업부 차장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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