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턱대고 개정안에 포함시켜
국제 투기자본 놀이터 만드나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2004년 3월이다. SK그룹의 경영권을 뿌리째 흔들던 외국계 헤지펀드 소버린의 교묘함에 두 번이나 무릎을 친 적이 있다. 소버린이 사들인 SK주식회사의 지분이 14.99%라는 것부터 그랬다. 0.01%만 더 사들이면 SK그룹이 SK텔레콤의 경영권을 잃을 수밖에 없는 전기통신사업법을 지렛대로 삼은 전략인데, 아무도 생각지 못한 묘수였다.
소버린은 그해 연말 지분 14.99%를 5개 자회사 펀드에 3%씩 분산시켰다. 이유는 단순 리스크 관리 차원이라고 했다. 그러나 거짓말이었다. 전문가들은 펀드가 만기가 돼 다른 펀드로 옮긴 것이라든가, 처분 수순을 밟기 위해 지분을 잘게 찢어 놓은 것이라고 넘겨짚었다. 모두 틀렸다. 소버린이 원하는 인물을 감사위원으로 선출하기 위한 주총 준비작업 차원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건 그로부터 시간이 제법 흐른 뒤였다. 결국 증권거래법에 따라 최대주주인 SK그룹 계열사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은 3%로 제한됐고, 소버린은 보유주식 15%의 의결권을 모두 행사할 수 있었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3%룰 적용, 이와 함께 소버린이 주총에서 SK와 표 대결에 나섰던 안건이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제다. 묘하게도 해외 투기자본이 요구해온 이 모든 제도를 강제 규정화하겠다는 것이 얼마 전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상법개정안이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소버린만이 아니다. SK텔레콤을 직접 겨냥했던 타이거펀드나 KT&G를 공격했던 칼 아이칸도 해당 기업에 감사위원 분리선임과 집중투표제, 전자투표제 도입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장기투자를 통해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소수주주의 권익을 되찾겠다는 명분을 내걸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단기간에 수백억원에서 1조원에 가까운 시세차익을 챙긴 뒤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들의 뒤를 따라다니던 진짜 소수주주들만 손해를 봤다. 국제 자본을 위한 상법개정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투기자본에는 기업 공격에 더없이 좋은 제도이고, 기업 활동에는 장애물일 수밖에 없는 제도다. 집중투표제부터 그렇다. 이사를 뽑을 때 한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표를 행사해 소수주주의 목소리를 낼 이사를 뽑게 해주겠다는 것인데, 부작용이 적지 않다. 자칫 경영진 간 갈등으로 의사결정이 지연돼 기업 경쟁력 상실이라는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제도다. 집중투표제가 상법에 반영된 것은 1998년이지만 92%의 기업이 이 제도를 정관에서 배제시켰다. 주주들이 다 반대한 제도를 이번에 법무부가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이 제도를 의무화한 나라는 러시아 멕시코 칠레 등 2류 국가 3국에 불과하다. 선진국이 왜 이 제도를 의무화하지 않는지, 고민이나 해봤는지 모르겠다.
전자투표제도 마찬가지다. 주총 활성화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은 일부 주주만을 위한 제도다. 헤지펀드나 늘 그들과 손을 잡는 시민단체들이 주장하는 단골메뉴인 까닭이다.
다중대표소송제 역시 투기자본의 입맛에 딱 들어맞는 제도다. 소수주주가 자회사 이사의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소송을 그 자회사에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해서 승소 판결을 받더라도 배상금액은 회사에 귀속되고, 소를 제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가가 떨어질 수 있다. 일반 주주들에겐 흥미 없는 제도이지만 투기자본에는 다르다. 소송 남발을 통해 경영권에 개입하고, 가격이 떨어진 모기업 주식을 매집하는 데 이렇게 좋은 제도는 없다.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스탠더드라며 상법 공정거래법 등 기업 관련법을 줄줄이 개정해 기업에 올가미를 씌워 놓은 정부다. 투자자들의 단기 이익이 미래를 위한 기업의 의사결정을 앞서는 시대가 십수년 흘러왔다. 과감한 투자는 뒷전이고 기업은 늘 경영권 방어에 전전긍긍해야 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침체된 경제의 모습이다.
소버린을 둘로 나눈 챈들러 형제는 싱가포르와 두바이에서 기업지배구조 개선의 기치를 내건 채 여전히 이머징마켓 기업 사냥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겨냥했다는 한국의 상법개정안을 살펴봤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기업을 뛰게 만드는 법이 상법이다. 그런 법으로 투기자본이 뛰어놀 놀이터를 만들겠다니, 이게 어디 될 법한 얘기인가.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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