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스트라디바리우스

입력 2013-08-01 17:30   수정 2013-08-01 22:21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는 현란한 기교로 청중을 매료시켰다. 명성이 하늘을 찌를 듯하자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명품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 덕분일 뿐”이라며 비아냥거렸다. 어느 날 그는 외형이 똑같은 가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연주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지켜보던 그는 바이올린을 내팽개치고는 밟아 부숴버렸다.

이 일화는 파가니니의 뛰어난 실력을 강조하는 얘기지만, 역설적으로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얼마나 명기(名器)인지를 들려준다. 300여년 전 이탈리아 명장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이 ‘신의 현악기’는 부드러우면서 우아하고 날카로우면서도 명징한 선율로 낭만과 슬픔, 정열의 음색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전 세계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선망하는 제1의 악기다.

신비로운 소리의 비밀이 밝혀진 건 얼마 전이다. 1645~1715년 극심한 한파가 이탈리아를 강타했는데 이 과정에서 성장이 느려진 나무의 촘촘한 나이테 덕분에 미묘한 깊은 음색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스위스 연구진은 한파 속에서 자란 나무처럼 탄성을 높여주는 곰팡이균 배양액을 가문비나무와 단풍나무에 넣고 9개월간 번식시킨 뒤 그 나무로 바이올린을 만들어 화제를 모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블라인드 테스트에 참가한 전문가들이 진품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구분하지 못했다.

물론 재료만 좋다고 명품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스트라디바리만의 심미안과 섬세한 감각, 고도의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90 평생에 1000여개의 명품악기를 만들었는데 이 중 바이올린 540개, 비올라 12개, 첼로 50개가 남아 있다. 이작 펄만이나 정경화 등 많은 연주자들이 지금도 그의 악기를 쓴다.

워낙에 고가여서 웬만한 연주자들은 살 엄두도 못 낸다. 2011년 영국 시인 바이런의 손녀가 소유했던 스트라디바리우스는 980만파운드(약 172억원)에 팔렸다. 2010년 뉴욕 경매에서 360만달러(약 39억원)에 팔린 것도 있지만 경매에 나오는 게 거의 없을 정도로 희소하다.

그래서 음악재단이나 예술후원자들이 보유하고 이를 재능 있는 아티스트에게 장기 대여해주는 게 관행이다. 3년 전 런던에서 도난당했다가 엊그제 극적으로 되찾은 김민진의 21억원짜리 바이올린도 그의 재능에 반한 영국 음악애호가가 영구임대해 준 것이다. 샌드위치를 사던 그에게서 악기를 훔친 범인들은 이듬해 붙잡혔지만 악기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는데, 공범들이 명기의 가치를 모르고 인터넷 카페에서 단돈 100파운드(약 17만원)에 처분하려고 했다니 참, 우습기도 하고 딱하기도 하고….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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