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뇌물을 받을 때 유의할 점

입력 2013-08-04 17:07   수정 2013-08-04 23:07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세종이 온양 온천으로 행차할 때 고관대작들이 대거 수행했다. 기회를 놓칠세라 충청감사가 창고를 풀어 ‘떡값’을 돌렸다. 이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헌부가 칼을 뺐다. 그러나 세종은 “법대로 처리하자면 신하들을 다 바꿔야 할 판”이라며 말렸다. 윗물이 이러니 아랫물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당연히 뇌물을 전달하는 브로커가 활개쳤고 ‘배달 사고’가 속출했다. 배달 분쟁 처리를 직업으로 삼는 자들이 있을 정도였다.

지금도 다를 바 없다. ‘검은돈’이니 영수증이 남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은 출처가 투명하지 못한 음성자금이어서 중간 전달자가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착복하기 쉽다. 대표적인 배달 사고는 1997년 한보사건 정치인 수사와 청문회 때 드러났다. 회장의 오른팔이 유력 정치인에게 전달하라는 5000만원 전액을 꿀꺽했다가 들통난 것이다.

아랫사람이 상사의 이름을 앞세워 뇌물을 요구해 가로채는 경우도 있다. 재개발 사업과정에서 지역주택조합장으로부터 주택법 개정 청탁과 함께 억대 금품을 받아 챙긴 야당 의원의 전직 비서관이 그런 케이스다. 사행성 게임 비리가 터졌을 때 한 경품상품권업체 간부는 자기 회사 사장을 속이고 내연녀 아들의 계좌로 뇌물을 송금했다가 쇠고랑을 찼다. 2000년대 초 공적자금비리 수사 때 구속된 한 건설회사 회장은 사건을 무마해주는 명목으로 어느 사찰 비구니에게 9억원을 건넸지만, 비구니가 돈만 챙기고 로비는 하지도 않았으며 실제 로비할 배경도 없었던 것으로 밝혀지는 바람에 망신을 두 번이나 당했다. 배달 사고 당사자의 거짓말 때문에 뇌물 수수 의혹에 휘말리는 사람도 많다. 총선 공천 대가로 수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던 전직 의원은 무혐의를 입증할 때까지 온갖 곤욕을 치러야 했다.

국가 대사에서도 배달 사고는 자주 터진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 송금 과정에서도 논란이 없지 않았다. 대남업무를 도맡다시피했던 김용순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는 결국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러니 한 구의원에게 전달될 500만원짜리 돈 상자가 이웃집으로 잘못 배달되는 통에 돈주인 공방까지 벌어진 ‘황당 사건’ 정도는 차라리 코미디라고 해야 할까.

국세청 역대 청장 중 절반이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도 배달 사고 의혹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모든 어두운 거래에는 배달 사고가 필연적으로 끼어든다. 뇌물 조사 과정에서 한두 사람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울 수밖에 없는 데서 오는 필연적 계산착오가 바로 배달 사고의 본질이기도 하다. 가족끼리 고스톱을 쳐도 계산이 틀리다지 않은가. 그러니 뇌물을 먹을 때 부디 조심할진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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