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월가 이색대결…'지브리의 저주' 와 '골디락스 기대'

입력 2013-08-04 17:25   수정 2013-08-05 01:41

IT 주가는 급등 후 대부분 하락…제조업은 상승하면 오래 지속돼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제조업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고 있다. 최근 들어 예측기관과 투자은행(IB)들이 새롭게 제시하는 화두다. 세계 증시도 1990년대 초반 이후 20년 만에 제조업이 이끌고 있다. 미국 3대 지수 가운데 제조업종이 많이 편입된 다우존스지수와 S&P500지수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으나 정보기술(IT) 업종이 대부분인 나스닥지수는 상대적으로 부진하다.

이달 들어 각국이 발표하는 제조업 지표는 일제히 호조세다. 전반적인 제조업 동향을 알 수 있는 구매관리자지수(PMI)는 미국, 유럽, 중국 등 대부분 국가가 ‘50’을 넘는다. 이 지수가 ‘50’을 넘으면 회복 국면을 의미한다. 2분기 일본 단칸지수도 1분기에 비해 무려 12포인트나 급등했다. 한국만 유일하게 부진하다.

제조업 지표가 오랜만에 기지개를 켜는 것은 각국의 거시경제정책 우선순위가 바뀌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종전처럼 단순히 성장률을 끌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 그중에서 청년층 일자리 창출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것이 요즘 각국 경기 대책의 목표다. 그만큼 청년층 실업이 이제는 인내할 수 있는 임계 수준을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국가의 청년층 실업률은 전체 실업률의 두 배를 훨씬 웃돌고 있다. 가장 심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청년 실업률은 25%에 달한다. 위기 발생국은 50%를 넘는 가운데 스페인의 경우 60%에 달한다. 청년 10명 가운데 6명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일자리를 구한 청년들도 정규직을 구한다는 건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과 마찬가지다.

2년 전 런던 폭동 사태, 반(反)월가 시위 등 거리에 뛰쳐나와 항거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이제는 청년 실업의 주범으로 꼽히는 IT 업종을 파괴하는 신러다이트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갈수록 잦아지는 컴퓨터와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한 각종 바이러스 전파,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 등이 대표적인 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각국의 산업 정책도 제조업을 중시하거나 IT 업종과 균형을 맞출 수밖에 없다. 1990년대 초반 이후 주력 산업이었던 IT 업종은 네트워크만 깔면 깔수록 생산성이 향상하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이 업종이 주도가 돼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일자리, 특히 청년층의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다. ‘청년층 고용창출 없는 경기회복’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제조업은 생산하면 할수록 생산성이 떨어지는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된다. 이 때문에 IT산업이 주도할 때와 같은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을 더 투입해야 한다. 과거 제조업이 주도가 돼 경기가 회복할 때는 그만큼 일자리가 늘어나 지표와 체감경기 간 괴리가 발생하지 않고 양극화도 심해지지 않는다.

최근 각국이 추진하는 제조업 중시정책은 처한 여건에 따라 독특하다. 미국은 세제 지원을 통해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제조업 재생(refresh)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일본은 엔저(低)를 통해 ‘제조 수출업의 부활(recovery)’ 정책에 주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전통적으로 제조업이 강한 독일은 계속해서 경쟁력을 유지해 나가는 ‘제조업 고수(master)제’, 중국은 잃은 활력을 다시 불어넣는 ‘제조업 재충전(remineralization)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제조업 르네상스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 정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글로벌화의 하나로 해외 진출을 권장했던 제조업을 이제는 안으로 끌어들이는 ‘리쇼오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정책이 예상 밖으로 효과가 크자 오바마 정부는 집권 2기에 들어서는 ‘일자리 자석정책’으로 한 단계 격상시켰다.

또 인수합병(M&A) 시장을 통해 제조업 부활에 주력하는 것도 종전과 다른 점이다. M&A 시장은 거래되는 매물의 성격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정상적인 기업이 거래되는 ‘프라이머리 시장’과 부실기업이 거래되는 ‘세컨더리 시장’이다. 바로 후자에서 나오는 부실기업을 인수해 제조업을 부활시키는 점이 주목된다.

각국의 제조업 중시 정책은 글로벌 증시 입장에서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 IT 업종은 라이프 사이클이 매우 짧기 때문에 이 산업이 주도될 때는 주기가 짧아지고 ‘경기순응성’이 심해진다. 경기 순응성이란 경기가 과열일 때 정점이 더 올라가고 침체될 때 저점이 더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특정국 경기순환에서 경기순응성이 나타날 때는 전망기관의 예측력이 떨어지고 경제 정책을 비롯해 각종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워진다. 증시에서도 IT 주가가 급등하면 곧바로 떨어지는 ‘지브리의 저주’에 걸린다. 지브리의 저주란 지브리 스튜디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만 방영되면 시장이 안 좋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투자자에게도 ‘냄비 속성’이 빨리 자리 잡는다.

IT 업종과 대조적으로 제조업이 주도가 될 때는 어느 국면(예:회복기)이든 진입하기가 어렵지 일단 진입하면 오래간다. 주기가 길어지고 진폭이 축소되는 ‘안정화’ 기능이 강화된다.

주가도 고개를 들면 그 기간이 비교적 오래가는 ‘랠리’가 형성된다. 최근 월가를 중심으로 ‘제조업 르네상스발 골디락스 증시’에 대한 기대가 꾸진히 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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