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상법 개정, 속도 조절 필요하다

입력 2013-08-05 17:44   수정 2013-08-05 22:15

의무화한 나라 없는 집행임원제
법리 검토 필요한 다중대표소송
나라경제 큰틀에서 더 논의해야

신현윤 연세대 교수, 법학전문대학원장



법무부는 지난달 17일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집중투표제 및 전자투표제를 의무화하고, 자산 2조원 이상 대규모 상장회사에는 집행임원제를 의무화하는 한편 감사위원을 맡을 이사를 선출할 때 3%의 의결권 제한 규정을 적용하도록 했다. 그 밖에 도입 여부를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제기됐던 다중대표소송제도를 도입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추진된 이번 상법 개정은 최근 경제민주화 입법과 함께 기업지배구조 개편의 시금석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법무부는 투명하고 건전한 경영과 기업문화를 유도하기 위한 법적 기반을 강화하는 데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교차하고 있다.

우선 개정안대로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제를 의무화하면 소수주주의 회사경영 참여가능성이 높아지고, 대주주의 경영권 전횡을 막을 수 있게 된다. 또한 집행임원 선임을 의무화하고 감사위원인 이사의 선임단계에서부터 다른 이사와 분리해 선출함으로써 기업지배구조 내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할 경우 모회사 주주들의 자회사 파행운영에 대한 감시가 쉬워지고, 기업집단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강화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번 개정안은 기업현실에 비춰볼 때 당장 받아들이기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외국 입법례보다 앞서 나간 측면도 있다. 무엇보다 집행임원제를 의무화할 경우 회사 업무집행을 둘러싼 견제와 균형이 이뤄질 수 있겠지만, 회사 경영판단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현행 이사회제도의 강점이 상당 부분 훼손될 수 있다. 이제까지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과 집행을 통해 국제적으로 치열한 경쟁을 해왔고, 앞으로도 해나가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실무상 혼란이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집행임원제를 의무적으로 도입한 나라는 아직까지 없으며, 미국과 일본에서조차 기업의 자율에 맡기고 있다.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제를 의무화할 경우 일반적, 형식적으로 본다면 주주총회를 활성화하고 소수주주의 경영참여 촉진이라는 대명제가 실현될 수 있지만, 외국인 지분율이 절반을 넘는 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 SK텔레콤 등 국내 유수의 대기업 입장에서는 그나마 어렵게 유지해온 경영권을 위협받게 되고, 기업경영정보의 외부노출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기업이 정상적인 투자활동보다는 매년 경영권 방어에 치중함으로써 국익적 차원에서 득보다 실이 클 수도 있다.

다중대표소송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다중대표소송은 기업집단 내에서 지배주주나 경영진의 부당한 사익추구에 대한 견제수단이 될 수 있지만, 아직 기업집단을 법적 실체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 우리 상법 하에서 법리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비교법적 연구가 좀 더 이뤄져야 한다.

이번 상법 개정의 발단이 됐던 대기업집단 총수의 회사경영에 대한 과도한 영향력이 기업지배구조의 왜곡이라는 불합리한 결과를 낳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어찌 보면 총수의 영향력은 그동안 기업집단 내의 실질적인 질서 유지의 구심점으로 작용했고, 경영권 통합을 통해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과 규모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했다.

공정한 거래관행을 정착시키고, 잘못된 기업지배구조를 시정하려는 노력은 지속돼야 하지만, 우리 국가경제 전체라는 큰 숲을 보면서 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상법 개정안이 본격 논의될 예정이다. 한정된 자원으로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 기업의 현실에서 자본주의의 기본가치가 존중되면서 기업지배구조의 정당성 확보와 기업경영의 효율성이라는, 긴장관계에 있는 두 개의 목표가 조화롭게 달성될 수 있도록 보다 진지하고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

신현윤 < 연세대 교수, 법학전문대학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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