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경제 확대-세수부족 악순환
신용카드 공제축소는 신중해야 "
조영무 <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우리 경제의 ‘캐시 이코노미’가 확대되고 있다. 캐시 이코노미란 현금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경제를 말한다. 캐시 이코노미의 확대 조짐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우선, 시중에 풀린 화폐 규모가 급증하고 있다. 화폐 발행잔액은 5월 말 기준 전년 대비 15% 늘었다. 이대로라면 올해 전체 화폐 순발행액은 예년의 2배 수준인 9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렇게 공급된 화폐는 되돌아오지 않고 사라지고 있다. 특히 5만원권은 올해 들어 환수율이 52%에 불과할 정도로 ‘화폐의 퇴장’ 현상이 두드러진다. 최근 개인금고의 판매가 늘면서 장롱이나 땅 속에 거액의 현금을 보관하는 부자들이 늘고 있다는 추측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결과, 시중에 대거 풀린 화폐가 정작 실물경제 활성화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화폐발행액으로 나눈 화폐 유통속도는 2009년 2분기 35배에서 올해 1분기 23배로 떨어졌다. 화폐 한 단위가 실물경제 생산 및 거래에 기여하는 정도가 빠르게 둔화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현금 거래를 늘리고 있다. 개인 신용카드 사용액 증가율은 2년 사이에 5분의 1 수준으로 급락했다. 자금이체 등 다른 지급결제 수단들의 증가율에 커다란 변화가 없음을 감안하면, 신용카드를 이용한 지급결제 중 상당 부분이 현금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기록이 남지 않는 현금 거래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조세 당국이 세원을 포착하고 세금을 부과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즉 불투명한 캐시 이코노미의 확대는 정부의 규제를 벗어난 지하경제의 확대를 유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하경제 연구의 권위자인 슈나이더 교수에 의하면, 한국의 GDP 대비 지하경제 비중은 2000년 27.5%에서 2009년 24.5%까지 낮아졌다가, 2010년에는 24.7%로 상승했다. 2009년 하반기에 고액권 지폐인 5만원권이 발행되고 화폐 유통속도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한 직후 지하경제 비중이 상승한 것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지하경제를 유발하는 다양한 요인 중 자영업 요인의 영향이 가장 크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자영업 요인이 지하경제의 44%를 유발하는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우리 경제에서 캐시 이코노미가 확대되면 현금 거래가 늘면서 자영업 부문의 거래 및 소득 불투명성이 더욱 악화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올 들어 정부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향후 5년간 27조원의 세수를 확보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세원 발굴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되레 세금 추적을 피하기 쉬운 현금 거래 선호 현상이 심화되고, 자산가들의 현금 재산 보유 및 이전이 증가하는 모습이다. 지하경제 규모를 줄이려는 노력이 지하경제 규모를 확대하는 ‘지하경제 양성화의 역설’이 우려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정부는 세수 확보 및 역진성 완화를 근거로 신용카드 소득공제의 축소 및 폐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제도는 1999년 도입 이후 고소득 자영업자의 세원 공개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우리 경제의 캐시 이코노미 확대가 우려되는 시점에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축소 또는 폐지하는 것은 지하경제 확대로 인한 세수 감소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
신용카드 소득공제의 변경이 불가피하다면 우리 경제의 캐시 이코노미 확대 속도를 감안해 그 시기를 신축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기 대응 및 복지 확대 등의 수요로 인해 재정지출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지하경제가 확대될 경우 세수 부족, 재정 악화, 세율 인상, 지하경제 확대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동시에 우리 경제의 캐시 이코노미 확대를 방지하고 지하경제 규모를 줄여나가기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시행해야 한다. 정부가 추진 중인 국세청의 금융정보분석원 정보 활용 및 재산추적기능 강화, 조세회피방지 규정 보완 등과 같은 방안의 실효성을 제고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불성실 납세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교육을 통해 국민들의 납세의무 의식을 높여야 할 것이다.
조영무 <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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