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번홀까지 보기 없어서 싱글 노렸더니 '와르르'
코스 공략에 창의성 필요…검진센터 운영에도 적용
“골프에서나 병원 경영에서나 지나친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원칙을 잃고 욕심을 부리는 순간 무너지는 거죠.”
구력 17년의 조상헌 서울대병원 헬스케어시스템 강남센터 원장(54)은 자신의 골프철학으로 ‘무욕론’을 강조했다. 고객 맞춤형 건강검진으로 임상예방의료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서울 역삼동의 서울대병원 강남센터에서 지난 5일 조 원장을 만났다.
“작년 크리스탈밸리CC에서 13번홀까지 보기 없이 버디 하나에 파 12개를 쳤어요. 이러다가 ‘싱글’ 대박 치겠다고 과도한 욕심을 냈더니 그 순간부터 무너지더군요. 결국 70대 후반으로 마쳤습니다. 병원 경영도 수익만 생각하면 단기적으론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수익에 대한 욕심보다 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어가겠다는 우리의 비전과 원칙을 중시해야 합니다.”
초등학교 때 리틀야구 선수로 활동했을 정도로 운동을 좋아하는 조 원장이 골프채를 처음 잡은 것은 1996년 서울대 교수로 해외 교환연수를 갔던 영국에서였다. 조 원장은 “골프의 본고장 영국은 골프를 배우는 환경과 분위기가 다르더라”며 “한 세트에 50파운드(약 8만5000원)를 주고 골프채를 사 60파운드(약 10만3000원)을 내고 5회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큰 부담 없이 골프를 배울 수 있었다는 것. 그는 “레슨 코치가 클럽 잡는 법 등 기본만 가르쳐준 뒤 나가서 즐기라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골프의 발상지이자 최근 브리티시오픈이 열린 세인트앤드루스에서 골프를 친 경험도 들려줬다. 조 원장은 “1997년 한국에서 출장 온 분들과 ‘올드코스’가 생긴 지 4년 뒤에 만들어진 ‘뉴코스’에서 공을 쳤는데 악명 높은 강풍 때문에 공이 겨냥한 곳보다 50~60야드 옆에 떨어졌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조 원장의 베스트 스코어는 77타, 핸디캡은 13이다. 5년 전 경기 용인시 레이크힐스CC에서 이글을 친 경험도 있다. 그는 “파5 홀에서 세 번째 샷을 홀에 집어넣으며 이글을 성공시켰는데 동반했던 아내와 처제는 골프의 기본도 모르는 상태여서 ‘이글이 뭐냐’고 되묻더라. 그래서 이글을 하고도 이글패가 없다”며 아쉬워했다.
“골프는 정말 창의적인 운동입니다. 2011년 대만의 청야니가 미국 LPGA투어 하나은행챔피언십에서 보여준 창의적인 샷에 감탄했어요. 파5 13번홀에서 티샷을 옆 홀로 보내서 2온을 하더군요. 룰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창의적인 발상으로 목표에 도달하는 청야니를 보고 많이 배웠습니다.”
조 원장은 평소 골프에서 키운 창의적인 생각을 병원 경영에도 적용하고 있다. 강남센터에서 건강검진의 개념을 헬스케어로 한 단계 끌어올린 것이 그런 사례다. 그는 “고객의 건강검진 데이터를 바탕으로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질병 가능성을 미리 예측하고 의료 서비스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은 고객들의 높은 평가로 이어졌다. 한국소비자원이 9개 대형병원 건강검진에 대한 소비자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서울대병원 강남센터가 1위를 차지했다.
조 원장은 “강남센터 설립 10주년을 맞아 골프에서 배운 창의력을 발휘해 맞춤형 건강검진을 체계화할 생각”이라며 “인간이 신체적·정신적으로 행복할 수 있는 의료 시스템을 만드는 일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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