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인사개입설 휘말리는 靑 참모들

입력 2013-08-07 17:20   수정 2013-08-08 05:08

정종태 정치부 차장 jtchung@hankyung.com


박근혜 정부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에 발탁됐다가 5개월여 만에 전격 교체된 허태열 전 실장. 인사 발표가 난 지난 5일 사무실 짐을 정리하면서 측근들에게 이런 심정을 털어놨다고 한다. “경질이니 뭐니 그런 건 넘어갈 수 있지만, 인사문제에 개입해 문책당했다는 보도는 정말 섭섭하다.”

인사문제 개입이란 게 뭐길래 그토록 섭섭했을까. 허 전 실장이 정부 위원회나 공공기관 인사에 개입해 자기 사람을 심으려 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건 벌써 한두 달 전 일이다. 그중 압권은 모 시중은행장 인사를 둘러싼 소문이다. 행장 후보에 올랐던 특정 인사 C씨를 허 전 실장이 같은 지역 동문 출신이라며 밀었다는 것이다. 청와대 비서실장만큼 막강한 ‘빽’이 없을 터이니 C씨 내정은 한때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說'에 시달리는 참모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결과는 달랐다. 허 전 실장이 밀었다는 후보는 떨어지고 제3자가 행장으로 내정된 것이다. 내정된 행장을 놓고선 ‘VIP(대통령을 부르는 호칭)’ 의중이 실렸다는 설(說)까지 나돌았다. 급기야 시장에선 허 전 실장을 겨냥해 ‘끈 떨어진 비서실장’이니, VIP 의중도 못 읽는 ‘바보 실장’이란 얘기까지 나왔다.

청와대 참모진의 인사개입설은 허 전 실장만이 아니다. ‘왕수석’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정현 홍보수석 역시 예외가 아니다. 모 기관장 인사를 둘러싸고는 허 전 실장과 이 수석이 각각 동향 출신을 미느라 ‘혈투’를 벌였다는 소문도 나왔다. 조원동 경제수석도 마찬가지다. 그가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 인사에 개입했다고 소문이 나돈 곳을 모두 세어 보니 7곳이나 된다. 심지어 모 금융지주 회장을 놓고는 조 수석이 특정인 선임을 반대하는 장문의 편지를 써 윗선에 올렸다는 루머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청와대 참모진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은 이들이 권력을 이용해 ‘호가호위’하는 위인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안다. 더구나 모든 인사를 꼼꼼히 챙기는 박근혜 대통령 스타일을 감안하면 중간에 참모들의 사심이 개입된다는 것도 믿기 어렵다. 결국 소문의 대다수는 해당 기관 내 후보자들끼리 이전투구하면서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역(逆)정보로 흘린 흑색선전일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인사독점 내려놔야

그럼에도 여러 경로로 참모진의 인사개입설을 보고받은 대통령이라면 아무리 두터운 신임을 보내는 참모라고 하더라도 한번쯤 미심쩍은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 허 전 실장이 섭섭함을 토로하는 것도 혹시나 본인이 이런 오해를 받은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일 것이다.

따져 보면 청와대 참모진의 속앓이 단초를 제공한 사람은 박 대통령 자신이다. 모든 인사를 직접 챙기려는 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청와대가 인사권을 독점하게 되면 시장의 모든 ‘안테나’는 청와대로 향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온갖 구설에 오를 개연성이 높다.

결론은 간단하다. 독점권을 내려놓는 것이다. 대통령이 꼭 인사권한을 행사해야 하는 정부 위원회나 중대형 공기업 기관장을 제외하곤, 나머지 절반 정도는 장관에게 이양하는 게 낫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기업 기관장 자리만도 295개인데, 6배수 검증을 하려면 1700여명에 달하는 인사들의 행적을 뒤져야 하니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독점권을 내려놓으면 인사속도도 빨라져 업무공백을 막을 수 있다. 또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약속한 ‘책임장관제’ 취지에도 맞다. 경제부총리를 지낸 한 원로인사의 말처럼 “인사권이 없는 책임장관제는 공염불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정종태 정치부 차장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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