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늙어가는' 맞춤양복산업

입력 2013-08-07 17:29   수정 2013-08-08 05:08

임현우 생활경제부 기자 tardis@hankyung.com


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양복명장 경기대회’. 국내 맞춤양복 전문가 70명이 최고의 양복 제작 기술을 겨뤘다. 하얀 셔츠, 검은 바지를 말끔하게 차려입은 양복 장인들이 “심사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선서를 마친 뒤 묵묵히 재단을 시작했다. 장내엔 엄숙함마저 감돌았다.

이 대회는 한국에서 1991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세계주문양복연맹 총회’ 행사의 하나다. 이탈리아, 프랑스, 대만, 중국 등에서 온 양복 장인들이 경연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날 참가자들의 업력은 평균 35년. 최고령 참가자는 인천 용동에서 도성양복점을 운영 중인 78세 김진성 씨였다. 양복 명장 심사위원까지 지낸 원로지만 “외국 손님들 앞에서 우리의 높은 기술력을 보여주기 위해 참가했다”고 했다.

김씨의 말대로 한국인의 맞춤양복 기술은 세계적 수준이다. 세계기능올림픽 양복 부문에서 1967년 첫 금메달을 딴 뒤 1983년까지 내리 12연패를 했다. 한국이 금메달을 독식하자 다른 나라들이 줄줄이 불참을 선언해 종목이 없어져 버렸다. 국내 양복 장인들의 자부심이 탄탄한 이유다.

그런데 행사장에서 만난 양복 명장 대다수는 “앞으로가 문제”라고 걱정했다. 맞춤양복 시장의 현역들이 50~60대가 마지막이어서 명맥이 끊길 날이 몇 년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날 대회에서 기자 또래인 30대 참가자는 두어 명에 그쳤다.

양복 제작 경력 45년의 백운현 씨(60)는 “과거엔 양복점 수습생으로 출발해 오랜 경험을 쌓은 뒤 자기 가게를 여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시대가 바뀌어 새로 유입되는 젊은이들이 뚝 끊겼다”고 안타까워했다. 한때 서울 도심과 호텔에서 성업했던 고급 양복점이 자취를 감추고 있는 상황에서 양복 장인들이 느끼는 위기감이 상당하다는 설명이다.

패션시장의 한 축을 이루는 제조 분야에서 ‘젊은 피’가 사라지는 현상은 양복만의 얘기는 아니다. 서울 동대문 패션타운에 의류를 공급하는 창신동 봉제타운도 40대 이상 비중이 91%에 달한다. “수십년간 공장을 지켜 온 중년 여성들이 은퇴하면 존립이 흔들릴 것”이란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젊은 디자이너들의 ‘개인기’ 덕에 한국 패션의 위상이 높아졌지만, 한쪽에선 전문 기술자의 명맥이 끊기고 있는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임현우 생활경제부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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