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속에서 질서 찾는 과정…'마지막 사중주' 잔잔한 흥행
사랑이란…
현실 이겨낸 열정의 산물…무명배우 다룬 '까밀…' 눈길
가족이란…
결핍 속 사랑 꽃피우는 관계…'나에게서 온 편지' 8일 개봉
창단 25주년 기념 연주회를 앞둔 현악사중주단의 음악적·정신적 멘토인 첼리스트(크리스토퍼 월켄)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면서 단원들은 큰 혼란에 빠진다. 스승과 제자, 부부, 옛 연인, 친구 사이로 서로를 잘 안다고 여겼던 단원들은 막상 위기가 닥치자 감춰둔 속내를 드러내며 갈등에 빠진다.
이 와중에 여성 비올리스트(캐서린 키너)와 남성 제2바이올리스트(필립 시모어 호프만) 부부의 딸(이모겐 푸츠)은 스승인 제1바이올리니스트(마크 이바니어)와 사랑에 빠진다. 단원들의 갈등은 딸 문제로 폭발하고 만다. “인생이 엉망이야”란 대사는 이들이 처한 상황을 함축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딸이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인생이란 혼돈과 실수투성이 속에서 질서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개봉 9일 만에 2만명 이상이 관람해 지금까지 개봉된 소규모 외국 예술영화 중 최다 관객 기록을 세운 ‘마지막 사중주’다. ‘카포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필립 시모어 호프만, ‘디어 헌터’의 크리스토퍼 월켄, ‘존 말코비치 되기’의 캐서린 키너 등 쟁쟁한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인다. 이들의 연주 장면은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엉성하지만 일반인이 보기에는 큰 무리가 없다.
이 영화를 비롯해 인생을 성찰한 외국 예술영화 세 편이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까밀 리와인드’는 지난달 18일 개봉해 상영 중이고, ‘나에게서 온 편지’는 8일 개봉한다. 유쾌한 상상으로 묵직한 삶의 이야기를 빚어내는 이들 영화는 휴가철을 맞은 현대인들에게 모처럼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를 제공한다.
‘까밀 리와인드’는 “삶이 사랑을 파괴하는 것일까? 인생을 많이 알수록 열정은 식는 걸까?”라는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진다. 40대 무명배우 까밀의 현실은 암담하다. 남편은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나 달아났고 딸도 멀리 떠났다. 어느 날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뒤 깨어나보니 자신은 현재의 모습인데,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고등학생 까밀로 대한다. 그녀에게 가장 행복했던 1985년으로 돌아간 것이다.
배우를 바꾸지 않고 과거로 간다는 설정은 독특하다. 까밀은 곧 시간여행을 즐기게 된다. 어릴 때 심각했던 문제들이 사소하고 귀엽게 보인다. 그러나 첫사랑이자 남편인 에릭과 만났을 때, 그녀는 난감해진다. 결말을 아니까 사랑을 시작하는 게 두렵다. 하지만 미래를 아는 까밀이 과거로 돌아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인생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게 용기라면,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현명함이라고 말하는 듯싶다.
‘나에게서 온 편지’는 내성적인 소녀 라셸이 발랄하고 엉뚱한 발레리와 친해지면서 라셸과 가족들의 일상이 달라지는 이야기다. 등장인물은 저마다 결핍된 존재들이다. 라셸의 엄마인 콜레트는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일에 서투르다. 그녀와 남편은 매일 밤 등을 돌리고 잔다. 발레리에게는 아빠가 없고, 라셸이 동경하는 소녀 마리나 캉벨은 엄마를 잃었다. 이같은 설정은 어쩌면 결핍이야말로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사랑을 추구하는 동인(動因)일 수 있다고 전한다.
이 영화는 지난해 ‘민들레’라는 제목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다. ‘타인의 취향’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감독 겸 배우 아그네스 자우이가 라셸의 엄마 콜레트 역으로 출연했다. 6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주연 자리를 차지한 꼬마 연기자들의 사랑스러운 연기도 돋보인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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