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더 테러 라이브' 하정우 "내가 여우라고? 곰이다"

입력 2013-08-08 08:00  


[김보희 기자] '하정우'. 이 이름을 떠올리면 많은 수식어가 생각난다. 믿고 보는 배우 하정우를 시작해 먹방의 창시자, 흥행 배우, 그림 실력, 입담, 인맥, 포스… 등등. 이름 석 자 속에 스치는 이미지는 무수히 많지만 신기하게도 그를 지칭할 만한 단어는 떠올려지지 않는다. 카멜레온처럼 언제든지 변신할 준비가 되어 있고, 변신이 가능한 배우 하정우.

그는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해 2002년 영화 '마들렌'에서 단역으로 영화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사실 잘 생긴 외모가 아닌 탓에 많은 작품에서 단역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차근차근 내공을 쌓았다. 그러던 중 2005년 영화 '용서 받지 못한 자'에서 말년 병장 유태정 역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더니 영화제에서 남자 신인상을 받는 영예까지 안았다.

이후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을 해온 하정우는 2013년 영화 '더 테러 라이브'까지 총 34개의 작품을 하며 '충무로의 대세'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보여 줄 수 있는 영화를 기획하고 있다. 현재 '롤러코스터'는 후반 작업 중이며, '허삼관 매혈기'는 캐스팅을 진행하고 있다. 이제는 감독 하정우를 볼 수 있는 셈.

연기, 그림, 입담 그리고 이제는 연출까지 모든 것을 척척 소화해내는 하정우의 모습은 부러우면서도 질투가 난다. 이에 몇몇 사람들은 그를 보고 '여우 같은'이라는 표현을 썼다. 하정우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이에 한경닷컴 w스타뉴스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하정우를 만나 영화 '더 테러 라이브'(감독 이병우, 제작 씨네2000) 비하인드 스토리와 함께 그의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 '척척 만능' 하정우, 알고 보면 곰이다!

이날 하정우는 '모든 일을 척척 해내서 여우 같다'는 평을 들었다. 그는 "제가 여우 같다고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 그런 의미라면 기분이 좋네요. (웃음) 그런데 사실 저는 여우라기보단 곰에 가까운 남자예요. 여러 가지를 해낸다는 것이 노력도 있고 운도 따라주는 것도 있었지만, 제일 큰 것은 시간이 많았던 것이 한몫했어요"라고 운을 뗐다.

"많은 분들이 제가 잠 잘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스케줄이 바쁘다고 생각하시는데 은근 여유로운 시간이 많아요. 영화가 개봉할 때는 홍보 활동 때문에 정말 바쁘지만, 그 외에 촬영할 때 대기 시간이 많고 스케줄이 없는 날도 있으니까요. 11년 동안 불규칙한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짬이 나는 시간에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게 됐죠."

그는 작품과 작품 사이 틈이 있는 시간에 그림을 그리거나 혹은 밀린 영화나 TV를 본다고 말했다. "요즘은 집에서 영화를 볼 수 있고 지난 프로그램들도 다운받아 볼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 있잖아요. 아니면 당장 TV를 틀어도 케이블이 있으니. 저 역시 남는 시간에 널브러져 TV를 보거나 밀린 잠을 자고. 아니면 취미인 그림을 그리거나 좋은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시나리오를 몇 글자 적어보기도 하죠. 근래에는 직접 연출하는 영화 생각을 많이 해요."

쉬는 시간에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게 없다는 하정우. 그는 일부러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을 벌이기 보단, 평소 취미이자 관심 있었던 것들을 틈틈이 하며 시간을 즐기며 보냈다.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이제야 빛을 보게 됐다고. 하정우는 주어진 일을 뚝딱 해내는 여우가 아닌 미련하게 하나둘씩 천천히 쌓아가는 곰 같은 배우였다. 이제는 그 시간과 내공이 배우에 이어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낳고 있다. 

그렇다면 예비 감독 하정우가 선택한 '더 테러 라이브'는 어떤 영화일까. 또 11년 차 배우 하정우와 상업 영화에 첫 도전장을 내민 신예 김병우 감독이 만났을 때 기싸움은 팽팽하지 않았을까. 연일 호평을 받으며 개봉 6일 만에 200만을 돌파한 '더 테러 라이브'가 궁금해졌다.



◆ 하정우 "'더 테러 라이브' 이야기와 감독, 두 가지 보고 선택"

7월31일 개봉한 '더 테러 라이브'는 한강 마포대교 폭탄테러라는 최악의 재난 사태를 목격한 뉴스 앵커 윤영화(하정우)가 신원미상 테러범과의 전화 통화를 독점 생중계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영화다. 특히 색다른 소재와 스팩타클한 전개로 호평을 받고 있다.

하정우는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시나리오를 보는데 이야기에서 에너지가 느껴지더라. 이후 김병우 감독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김 감독이 '제가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데 순간 믿음이 커졌다. 그래서 출연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물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김병우 감독이 '한 건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제일 임팩트 있게 들린 것은 '감독이 보고 싶은 영화'라는 말이었다. '감독이 보고 싶을 정도로 재밌게 만든 영화라면 관객이 봤을 땐 얼마나 재밌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믿음이 왔다."

감독이 보고 싶은 영화. '더 테러 라이브'는 정말 재밌다는 이야기가 절로 나올 만큼 흥미롭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하정우의 원맨쇼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하정우만 나오는 영화다. 이는 촬영을 하면서 하정우와 감독이 정말 긴밀한 대화를 많이 나눴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감독과 기싸움이요? 전혀 그런 것 없었어요. 오히려 상의하고 이런 장면은 어떨까 저런 장면은 어떨까 이야기한 점이 많죠. 제 의견이 반영된 장면이 있는데 도입 부분에 테러범의 전화를 받고 중계할 것을 고민하던 와중에 화장실에 가서 옷 갈아입는 장면이 있어요. 스튜디오에서 화장실 갈 때까지 윤영화의 감정 변화를 말보단 행동으로 해야 했기에 많은 대화를 나누며 반영했죠."

김병우 감독과 하정우는 서로 윈윈 관계를 유지했다. 부족한 점은 채우고 또 이야기를 나누고. "사실 제가 연출을 해봐서 그런지 오히려 감독의 영역에는 침범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절실하게 들더라고요. 그래서 현장에서 배우로 있을 때는 감독님의 디렉션을 받고 아이디어 정도를 이야기 나누는 편이에요. 오히려 폐가 될까 조심스러워하는 부분도 있어요."

사실 하정우는 신인 감독들과 인연이 깊다. 하정우를 만나면 뜬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그는 많은 신예 감독들을 발굴(?)해냈다. 윤종빈 감독과는 '용서받지 못한 자' '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에 이어 '군도'까지 함께 한다. 새파란 신인에서 이제는 충무로 흥행 배우와 흥행 감독으로 나란히 성장하고 있다. 또 나홍진 감독과는 '추격자' '황해'로 인연이 깊다.

"신인감독을 보는 눈이 탁월하다기보단 제가 인복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작품을 볼 때는 두 가지를 봐요. 이야기와 감독. '더 테러 라이브'도 그래서 선택한 거죠. 많은 배우분들이 주로 캐릭터를 본다고 하시는데. 저는 캐릭터보단 이야기가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야기가 재밌으면 캐릭터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도 있고요. 또 그 작품을 직접 쓰신 감독님들을 보면 죽은 작품도 살리는 분들인데. 재밌는 이야기를 못 살리시겠나요."

하정우의 끊임없는 인기 비결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바로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묵묵하게 내공을 쌓아가는 그의 끈기, 그리고 작품과 감독을 믿고 자신이 맡은 배역에 최선을 다하는 배우로서 자세가 11년 동안 뒷걸음질보다는 앞으로 성장하게 한 원동력이 아닐까.

곰이 동굴에서 100일 동안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됐듯이, 하정우도 열심히 쌓은 내공이 열매가 되어 관객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주는 작품으로 결실을 맺길 기대해 본다. '믿고 보는 하정우가 곰에서 여우로 변신하지 않길~.' (사진출처: 판타지오, 영화 '더 테러 라이브'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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