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알뜰주유소 정책의 그늘

입력 2013-08-08 17:10   수정 2013-08-09 10:40

배석준 산업부 기자 eulius@hankyung.com


“소비자들이야 기름 값이 싸면 좋겠죠. 하지만 정부가 주유소업계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유통 질서를 흔들어 버리면 자영업자들은 살아남기 힘듭니다.”

경기 용인시에서 주유소를 경영하는 A씨는 8일 기자와 대화하면서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 주도로 출범한 알뜰주유소가 늘어나면서 마진 압박이 심한 데다, 최근엔 대형마트까지 주유소 시장에 가세해 경영난이 심각하다는 얘기였다. 이 지역의 일부 대형마트들은 자체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ℓ당 1900원 안팎에 팔고 있다. 용인 평균 가격보다 60원가량 낮다.

경쟁으로 가격이 떨어지고,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공급자가 퇴출당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주유소업계는 정부가 예상된 문제에 대한 보완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아 피해를 입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2011년 알뜰주유소 도입 당시 1만3000개에 달하던 전국의 주유소 숫자가 적정한 규모였는지, 과다하다고 판단했다면 주유소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지 등을 면밀히 검토했는지 의문이란 주장이다.

자영주유소연합회에 따르면 폐업 주유소는 2011년 188개에서 작년엔 219개로 늘었고, 올해 상반기에만 185곳이 문을 닫았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300개를 넘길 분위기다. 그렇다고 사업을 접는 것도 쉽지 않다. 토양 정화비와 건물 철거비 등을 부담하려면 1억원 넘게 든다. 이 때문에 휴업 중인 곳도 400개가 넘는다.

지난달 용인에선 3곳의 주유소가 가짜석유를 팔다가 적발됐다. 단속에 걸린 주유소의 영업부장은 “저가 경쟁을 버티지 못해 유혹에 넘어갔다”고 낯간지러운 변명을 했다. 솜방망이 처벌이 가짜석유 판매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석유관리원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적발 건수는 1069건에 달하지만 등록취소는 13건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일시 영업정지와 과징금, 경고 등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처벌 수위를 높이는 동시에 석유 유통구조를 종합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폐업 비용 지원과 같은 자영 주유소의 출구전략 마련 등 대책을 고민해야 할 때다. “당국이 유통질서를 흐트러뜨리는 바람에 가짜를 팔게 됐다”는 가짜석유 판매상의 항변은 정부도, 소비자도 듣고 싶지 않은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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