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내든 '법인세 인하' 카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오바마 대통령이 법인세 인하 카드를 꺼내든 것은 9월 말까지 매듭지어야 하는 2014회계연도 예산안을 둘러싼 백악관과 공화당의 교착 상태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공화당의 숙원인 법인세 인하를 양보하는 대신 중산층 일자리 창출을 위한 예산 증액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백악관 관계자는 “2012년 대선 때 공약으로 제시한 것과 마찬가지로 법인세율을 현행 35%에서 28%로 내리고 제조업은 25%로 낮추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을 대표해 법인세 인하를 요구하고 있는 비영리 조직인 ‘더 레이트연합’은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은 올바른 방향이며 세제 개혁을 위한 중요한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하원의 세제개혁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민주·공화 양당 대표는 이례적으로 공동성명을 내놓으며 “낡은 세법이 기업 경쟁력과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을 대통령이 깨달았다는 사실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시퀘스터 재발 막아질까?
오바마 대통령은 “내가 2011년 제안한 ‘미국민을 위한 일자리 법안’(American Jobs Act) 패키지는 역사적으로 공화당이 지지한 아이디어임에도 일부는 의회를 통과했으나 대다수는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며 “공화당은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를 폐기처분하지 못하면 정부를 폐쇄(shut down)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화당은 경제 성장을 해치고 군사력을 약화시키며 일자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교육·과학·의료 분야에 대한 투자를 위축시키는 연방 정부의 예산 자동 삭감, 이른바 시퀘스터로 미국을 몰아넣고 있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공화당과의 재정감축 협상에 실패한 오바마 정부는 3월1일부터 발동된 정부 예산을 일괄적으로 삭감하는 시퀘스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미국 경제의 회복 속도는 느려졌고 3월 미국 기업의 직원 해고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30% 증가한 4만9000명에 달했다. 이후 신규 일자리 창출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제안은 오바마케어 등 늘어나는 재정지출을 지탱할 예산을 확보해 시퀘스터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처방인 셈이다.
#해외현금 본국 송금 세율도 인하
백악관은 이날 미국 다국적 기업들의 송금세율 인하 방안도 함께 제시했다. 대기업들이 세금 회피 목적으로 해외에 쌓아둔 현금에 일회성 수수료를 부과하고, 해외 수익을 본국으로 송금할 때 세율(현행 35%)을 낮추면 이 자금이 미국으로 유입되고 결국 세수도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 미국 기업들이 해외에 쌓아놓고 들여오지 않는 현금은 1조7000억달러로 추정된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5월 의회 청문회에서 “해외 수익의 본국 송금세율을 한자릿 수로 낮춰야 기업들이 현금을 가지고 올 것”이라며 세제개혁을 요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재계의 이 같은 요구를 수용한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세제개혁으로 생긴 재정 수입을 중산층 일자리 창출에 투자할 수 있다”며 “이것이 바로 중산층 일자리를 위한 ‘그랜드 바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연초 국정연설에서 500억달러의 재원을 마련해 도로 다리 등 사회간접자본, 대학 교육, 제조업 지원 등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의견 갈리는 공화당
공화당 내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에 의견이 갈리고 있다. 론 존슨 상원의원(위스콘신)은 “법인세를 좀 더 경쟁력 있게 개혁할 필요가 있다”며 협상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존 베이너 하원의장의 대변인은 “오바마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은 양보가 아니다”며 “세제개혁을 통해 일시적으로 늘어나는 재정 수입을 새로운 경기부양 자금으로 뽑아쓰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치 매코널상원 공화당 원내대표(켄터키)는 “그 계획은 초당적인 의견이 반영돼 있지 않고 타협안에 포함된 세금 인상 방안은 경제 회복에 도움이 될 만한 기업마저 더 침체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WSJ는 법인세 개혁이 예산안 협상과 연방정부의 부채한도 상향 조정 협상에서 최대 이슈로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병종 한국경제신문 기자 dda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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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피난처에 현금 쌓아두는 미국 기업들
현재 미국 기업들은 1조7000억달러가 넘는 돈을 세율이 낮은 이른바 조세피난처에 보유하고 있다. 이 돈을 본국으로 송금할 경우 35%의 송금세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벌어들인 돈을 해외에서 재투자할 경우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기업들이 막대한 현금을 미국으로 가져오지 않고 해외 자회사에 쌓아두거나 인수합병 등에 사용하고 있는 이유다.
해외에 1000억달러에 달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지난 4월 말 애플은 주주배당을 위해 회사채를 발행해 170억달러를 빌렸다. 5월에는 이 회사가 2011년 유럽에서 벌어들인 225억파운드(약 38조원)의 매출을 아일랜드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로 이전해 세금을 사실상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미국의 막대한 송금세와 법인세를 피하기 위한 방책이다.
지난 2년 동안 미국의 기업들은 해외 유보금을 본국으로 송금하기보다는 다른 외국기업을 인수하는 데 사용했다. 존슨앤드존슨은 스위스 의료기기업체 신데스를 197억달러에 인수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MS)는 룩셈부르크에 기반을 둔 스카이프를 85억달러에 사들였다. 해외에 쌓아둔 막대한 현금을 국내로 송금해 배당하면 주주들에게 큰 이익이 돌아갈 것 같지만 국세청에 헌납해야 할 막대한 세금을 생각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 돈으로 차라리 조세피난처로 알려진 국가의 기업을 인수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투자회사 로우스의 투자전문가 조 로젠버그는 “정부가 송금세율을 낮춰 기업이 외국에 쌓아 놓은 유보금을 본국으로 송금해 투자하면 일자리를 늘리고 민간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며 “일자리가 늘고 경기가 살아나면 더 많은 세금을 걷을 수 있어 정부 재정은 다시 튼튼해질 것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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