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는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과 개발, 그리고 보전에 매우 주요한 자료이다.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문화, 사회 상황 등까지 파악할 수 있는 종합자료이다. 지도를 보면 도로, 산림, 물길은 기본이고 농지, 도시, 각종 지형물이 상세하게 표시돼 있다.
남한은 2만5000분의 1 축척 지도가 900여매로 구성돼 있다. 이처럼 세밀한 지도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항공사진에 의한 측량이 가능해졌다는 점과 제작 장비가 눈부시게 발달했기 때문이다.
이런 지도가 풍수에서 명당을 찾는 데 요긴하게 쓰인다. 풍수지리에 웬 지도인가 의아해 하겠지만, 지도를 보면 산과 들로 뻗은 산줄기(지맥)가 등고선으로 표시돼 있다. 산에서 들이나 강·내 쪽으로 뻗어나간 등고선을 찾아 그 중심으로 선을 그리면 그것이 바로 풍수에서 찾는 지맥이다.
그리고 등고선이 내 쪽에서 산 쪽으로 치고 들어온 부분은 계곡에 해당된다. 지맥은 산에 저장된 지기가 흘러가는 통로이다. 지기가 뻗어간 모양을 살피면 그 이치가 참으로 묘하다. 솟는가 싶으면 엎드리고, 뻗는가 싶으면 되돌아 나간다. 마치 수관이 수려한 큰 나무의 나뭇가지처럼 굵은 지맥인 간룡에서 가는 지맥인 지룡이 사방팔방으로 가지 쳐 나간다.
2만5000분의 1 축척 지도 위에 지맥을 모두 그리려면 6시간 정도 걸린다. 그렇지만 그만한 지역을 발로 직접 돌아다닌다면 1주일은 족히 걸릴 것이다. 지도를 참고하지 않고 무작정 산을 찾는다면 앞산이 도대체 어느 산에서 뻗어온 산자락인지, 생기가 있는지 없는지, 자연의 순환 원리는 순행인지 역행인지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옛날에는 개인이 지도를 소지할 엄두를 못 냈다. 지도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곳에는 산줄기나 마을의 이름만 표시되어 있으니 직접 산을 오르지 않고서는 산세를 알 수 없었다.
교통마저 어려웠으니 얼마나 명당을 찾기 힘들었을까 짐작이 간다. 그들이 산천을 직접 돌아다니며 고달프게 명당을 찾았다면 현대의 풍수가는 책상 위에 지도를 펴놓고 등고선에 따라 지맥을 그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지도에서 명당을 찾으면 한 군(郡)에서 대개 10여개의 장소가 나온다. 하지만 안심하면 안 된다. 시중에 판매되는 지도는 1990년대에 제작된 것들도 많아 현재의 실제 상황과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골프장이 들어섰거나, 신도시가 세워졌거나, 도로가 새로 뚫리면서 명당이 완전히 파괴된 경우도 있다. 명당에 공장이나 연구소 등이 들어선 곳도 부지기수이고 기도원이 들어서 접근조차 어려운 곳도 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어느 정도 자연이 훼손되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개발에 앞서 사람과 자연의 조화를 최고 덕목으로 삼는 풍수를 고려했다면 그토록 무자비하게 명당들이 파괴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령한 기운이 가득 찬 명당은 하늘과 땅이 교감해 만들어 놓은 자연이기 때문이다.
고재희 < 대동풍수지리학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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