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위주 영업에 경쟁력 추락…SC·씨티 "환경 나빠진 탓"

입력 2013-08-11 17:13   수정 2013-08-12 03:21

뉴스 추적 - 고전하는 외국계 은행

효율성 제고위해 점포 줄여 성장기반 갉아먹어
국내 대형銀 속속 등장 … '규모의 열세' 심화될 듯



영국 스탠다드차타드(SC)그룹은 얼마 전 한국SC은행의 영업권 중 10억달러를 상각한다고 발표했다. 종전 영업권 평가금액은 18억달러. 절반 이상을 손실처리해 버렸다. 한국이 저성장·저금리 구조에 접어들면서 영업환경이 그만큼 악화됐다는 게 SC그룹의 설명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상당수 외국계 금융회사가 한국을 떠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어서 SC그룹의 판단은 상당한 충격을 줬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한국의 영업환경이 악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한국계 금융회사도 똑같이 맞닥뜨리는 문제인 만큼 외국계 금융회사의 잘못된 영업전략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리스크 관리로 안정적인 이익 거뒀으나…

미국 씨티그룹과 SC그룹은 2004년과 2005년 한미은행과 제일은행을 각각 인수했다. 한국 시장에 거는 기대도 컸다. 이들이 몰고 올 변화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금은 아니다. 둘 다 소규모 은행 중 하나로 취급받는다. 이들을 경쟁상대로 여기는 국내 대형 은행은 없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중 하나가 단기 이익 극대화 전략이다. SC와 씨티는 국내 은행 인수 후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관리비를 줄여 영업이익을 늘리는 전략을 구사했다. SC는 주택담보대출 위주의 가계금융을 키웠다. 손실 우려가 있는 기업금융은 외면하다시피 했다. 씨티는 부자고객을 대상으로 한 프라이빗뱅킹(PB)에 집중했다. 그 결과 전체 대출 중 가계대출 비중은 SC가 70%, 씨티가 60% 수준으로 높아졌다. 평균 50% 정도인 국내 은행보다 훨씬 높다.

영업점도 줄였다. 국내 은행 인수 후 SC는 41개, 씨티는 20개를 없앴다. 같은 기간 국내 은행 점포 수가 1000개 이상 늘어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 같은 전략은 단기적으로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내는 데 기여했다. 국내 은행들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등으로 고전할 때 이들은 이런 고민에서 비켜나기도 했다.

○외형 축소로 장기 성장 기반 약화

이 같은 전략은 단기적으론 유효했지만 장기적으론 경쟁력을 갉아먹는 결과로 나타났다는 지적이다. 몸집을 줄이다 보니 시장점유율이 급속히 축소됐다. SC의 예금(원화 기준) 점유율은 2005년 4.6%에서 지난해 3.5%로 낮아졌다. 씨티도 2004년 4.5%에서 지난해 2.4%로 떨어졌다. 대출(원화 기준) 점유율도 SC가 4.9%에서 2.7%, 씨티는 4.0%에서 1.8%로 축소됐다. 국내 은행이 지난 8년간 자산을 77.9% 늘린 데 비해 SC는 15.7% 증가하는 데 그쳤다. 씨티는 1.9% 오히려 감소했다. 김영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은행들이 꾸준히 자산을 늘리면서 성장 잠재력을 넓힌 것과 대조적으로 두 은행은 리스크를 최소화한 보수적인 전략을 구사하다 보니 장기 성장 기반이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규모의 열세 더 심화할 것”

두 은행은 이런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성장·저금리 기조의 고착화 △금융당국의 엄격한 규제 △유연하지 못한 노동시장 등으로 한국 영업 환경이 악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 시장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들 은행이 국내 은행을 인수했던 2004~2005년과 현재의 금융시장 환경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계 은행이 국내 은행에 비해 특별히 불리하거나 불합리한 환경에 노출돼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강조했다.

외국계 은행들로선 앞으로를 더 걱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국내 은행 간 인수합병(M&A)과 우리금융 민영화 등에 따라 대형 은행이 등장할 전망이어서 외국계 은행의 입지가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박일문 한국신용평가 기업·금융평가본부 연구위원은 “외국계 은행이 차별화된 전략을 마련하지 않는 한 국내 은행과의 격차는 더 벌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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