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개편안 재검토] "대통령까지 '세금 포퓰리즘'에 휘둘렸다"

입력 2013-08-12 17:01   수정 2013-08-12 23:02

朴대통령 발언…배경·파장

청와대 "국면전환 카드…원점 재검토 발언 한 듯"
전문가들 거센 비판 "여론 떠밀려 정치적 절충…해법 더 꼬이게 만들어"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내놓은 ‘세법개정안 원점 재검토 지시’라는 카드는 여론 동향이 심각하게 돌아간다는 판단 아래 내린 정치적 해법이라는 게 청와내 내 지배적인 평가다.

실제 이날 박 대통령의 발언 중 “서민과 중산층의 가벼운 지갑을 다시 얇게 하는 것은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정책 방향과 어긋난다.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 주기 바란다”는 부분은 당초 청와대 참모진이 마련한 원고에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법개정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는 주문은 박 대통령이 직접 정치적으로 판단한 결과라는 의미다.

◆국정운영 부담에 따른 정치적 판단

청와대 관계자는 “수석비서관회의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참모 대부분은 박 대통령이 ‘세법개정안의 방향은 옳지만 국민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게 잘못’이라는 수준의 발언을 할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박 대통령이 마지막에 ‘원점 재검토’라는 표현을 추가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판단은 세법개정안 관련 논란이 지속될 경우 하반기 국정운영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위기의식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세법개정안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고 있는데다, 일반 국민들의 여론도 나빠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국정운영에 드라이브를 걸어야 할 집권 1년차 하반기를 세법개정안 논란으로 허비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다 지난해 대선 후보 시절부터 중산층과 서민의 부담을 줄여주겠다고 강조해온 박 대통령 입장에서 ‘연소득 4000만~7000만원 봉급생활자들에게 연평균 16만원의 부담을 떠안겼다’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은 상당히 부담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와 관련, 박 대통령이 지난 주말 세법개정안에 대한 추가 보고를 들은 뒤 일부 참모진을 질책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실무진들이 국정철학을 제대로 공유하지 않은 채 세법개정안을 만들었다고 인식하고, 이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것 같다”고 전했다.

◆“여론에 휩쓸린 포퓰리즘 선택”

하지만 박 대통령의 세법개정안 재검토 발언에 대해 전문가들의 반응은 차갑다. 복지 혜택을 받으려면 누구나 ‘내가 돈을 내야 하는구나’라는 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솔직히 드러내놓고 양해를 구하는 게 맞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정호 연세대 교수는 “원점 재검토 발언은 여론에 휩쓸려 포퓰리즘적으로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번 세제개편안은 소득 상위 28%한테 세금을 걷어 하위 72%를 지원하겠다는 것인데, 상위 28%한테도 세금을 못 걷겠다고 하면 상위 10%에만 부담지우겠다는 것”이라며 “이걸로는 박 대통령이 제시한 복지재원을 맞추는 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증세 없이 복지를 늘리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며 “잘못했으니까 지금이라도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해야 하는데, 증세는 안 한다면서 사실상 증세를 하니까 더 꼬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염영배 충남대 교수(전 한국재정학회장)도 “이번 일은 대선 공약에서 증세 없이 복지를 늘린다고 한 박 대통령에게 원죄가 있다”며 “5년간 세제 개혁을 통해 18조원을 걷겠다고 했는데, 저소득층 세부담을 줄이면서 이를 맞추려면 누군가 세금을 더 내야 하고 중산층도 부담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들에게 이에 대한 설득 과정은 생략한 채 정치권에서 시끄러우니까 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도병욱/고은이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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