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너목들’ 정웅인 “강우석 감독님, 올해는 악역만 하라고 하시더라”

입력 2013-08-13 08:01   수정 2013-08-13 12:42


[최송희 기자] “말 하면 죽일 거다. 네 말을 들은 사람도 죽일 거야.”

이토록 강렬한 악인이 있었을까. 자신의 복수를 위해 몇 년에 걸쳐 수하(이종석)과 혜성(이보영)을 긴장케 만들었고, 몇 달에 걸쳐 시청자들의 마음을 졸이게 했던 민준국은 다소 태연한 모습으로 기자들 앞에 앉았다. 사람 좋은 웃음이며 실없는 농담은 오히려 공포심을 일으킬 정도로 태연하고, 낯선 모습이었다.

최근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 종영 기념 인터뷰를 위해 한경닷컴w스타뉴스와 만난 정웅인은 ‘민준국’이라는 한 벌의 의상을 한 자락에 걸어두고 있었다. 언제든 내키면 입고, 벗을 수 있는 옷처럼 ‘명장면 재연 좀 부탁드려요’라는 느닷없는 요청에도 놀란 기색 없이 민준국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그날, 모두는 떠올렸다. ‘이 남자, 진짜 배우구나.’

◆ 재발견 아닌 재발견

사람들은 ‘민준국’의 등장에 큰 충격을 받았다. 과거 MBC 시트콤 ‘세친구’나 영화 ‘두사부일체’에서 만났던 호쾌한 남자의 살기라니. 다소 충격적일 수 있는 등장이긴 했다. 이에 많은 이들은 코믹한 이미지로 각인되었던 정웅인의 ‘재발견’이라며 환호했지만, 사실 그의 강렬한 연기력은 늘 어느 작품에서나 빛나고 있었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표현이 맞을까 모르겠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악역을 받아들이는 것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 같았으면 사람들이 ‘수하 괴롭히지 말라’며 뒤통수도 때리고 했을 텐데. (웃음) 지금은 주변에서 축하한다고, 좋아한다고도 해요.”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전, 코믹한 캐릭터로 굳어졌던 정웅인은 “대한민국에서 고정 캐릭터가 된다면 다른 역할을 할 수 없다는 한계가 씁쓸하다”고 설명했다.

“나중엔 외모 때문에 역할에 한계가 오나 싶기도 하더라고요. 제가 한국적인 얼굴은 아니잖아요. 러시아나 몽골쪽? (웃음)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계속 배우를 하려면 코고 높이고, 주름고 없애야 하나 싶었는데 ‘너목들’로 완전히 해결했죠.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위안이 돼요.”

조곤조곤 상대를 웃게 만드는 타입. 정웅인은 인터뷰 내내 적당한 무게와 유쾌함으로 ‘뻔하지 않은’ 상황을 만들어냈다. 위트와 진지를 오가는 대화를 지켜보면서 온통 ‘살기’뿐이었던 민준국을 떠올리기란 힘들었다. 이에 “정웅인에게 ‘민준국’을 찾을 순 없지만, 정웅인 아닌 ‘민준국’을 상상할 수 없다”고 했더니 그는 “그렇게 잘 어울렸나요?”라며 눈을 반짝거렸다.

“사실 제가 민준국을 하지 않았더라도 ‘너목들’ 시청률은 잘 나왔을 거예요. 물론 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겠죠. 다른 ‘죽일 거야’ 시리즈가 나왔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중요한 건 ‘코믹한’ 이미지를 가진 제가 악인의 이미지로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잘 어울린다고, 매치가 된다고 해주시는  거예요. 감사하고 묘하기도 해요.”

그토록 ‘코믹한 이미지’를 벗고 싶었을까? 완벽한 이미지 변신 뒤에도 코믹한 이미지에 대한 걱정은 그가 가진 불안감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영화 ‘전설의 주먹’ 촬영 도중, 강우석 감독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투사부일체’까진 좋았는데 그 이후 행보가 아쉽다고요. 올해는 꼭 악역을 해라. 드라마도 좋으니 악역의 해를 보내라고 하시더라고요. 강우석 감독님은 제게 특별한 분이시거든요. 그 약속을 꼭 지키려고 했어요.”

코믹한 연기로 인기의 가도를 달렸지만, 그 이미지는 정웅인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정웅인은 강우석 감독을 두고 ‘자신을 믿어준 분’이라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강우석 감독님과 첫 만남에서 감독님이 ‘난 코미디가 안 되는 배우는 배우로 인정하지 않아’라는 말을 해주셨어요. 그런데 그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혼란이 오더라고요. 사실 제가 코미디 연기만 해온 것에 있어서 불안한, 내지는 불편한 마음이 있었는데 강우석 감독님의 이야길 듣고 ‘그래 내가 잘못 살지 않았구나’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거장인 감독님이 인정해주신 거잖아요. 그분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다음 작품도 악역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미 ‘악역’의 정점은 찍었다. 과거 ‘세친구’와 ‘두사부일체’처럼 말이다. 민준국 역할이 마음에 쏙 들었다는 것, 강우석 감독과의 약속은 이해하겠지만 악역의 정점을 찍은 가운데 다음 작품 역시 악역인 것은 독이 아닐까? 우려의 목소리에 정웅인은 단박에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부담감은 있지만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전혀 다른 모습의 악역이거든요. 푸켓 여행 이후에 바로 촬영에 돌입할 테니 기대해 주세요.”

◆ 아버지, 우리 아버지

정웅인에게도 ‘민준국’과 닮은 구석이 있다. 바로 그가 ‘가정’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것. 올해 42세에 접어든 정웅인은 가족들에게 ‘윤택한 삶’을 선물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가족들에게 좋은 아빠, 좋은 남편으로 남고 싶어요. 그게 꿈이죠.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리거든요. 가정에 소외되는 아빠들을 보면서, 40대에 가정을 지켜야 50대 역시 안정적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 제 나이 대 아빠들의 모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랑스러운 딸과 아내에 대한 애정은 몇 마디 말과 눈빛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다소 뻔하고, 잔인한 질문일 수 있지만 “민준국과 같은 상황이 온다면 어떨 것 같냐”고 질문했다. 정웅인은 금세 심각해진 얼굴로 “방법적인 차이겠지만 마찬가지로 복수하겠다”고 대답했다.

“그 순간이라면 드라마처럼 길게, 계획적인 범죄는 못할 것 같아요. 순간적으로 욱해서 응징하긴 하겠죠.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일 거예요. 이렇게 길게 장기적으로 복수하는 건 드라마니까 가능한 거겠죠.”

‘민준국’은 가장 악랄한 악인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가장 보호받지 못한 약자이기도 했다. 이에 정웅인은 “실제로도 그런 인물들이 있을 것”이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어느 신물을 보니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는 사람들은 무죄임이 드러나면 국가가 어느 정도 배상을 한다더라고요. 문제는 그 돈으로 그 삶이 배상이 되느냐 예요. ‘너목들’의 황달중이나 무죄로 풀려나는 민준국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에요. 이들처럼 약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껴요. 하지만 아무도 그분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니. 씁쓸하죠.”

한경닷컴 w스타뉴스 기사제보 news@w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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