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긴급 출동 119 체증…소방관은 '火가 난다'

입력 2013-08-16 17:10   수정 2013-08-16 21:38

나 몰라라 '얌체족'에 한번…'현장 무시한 규정'에 또 한번
50만번 출동에 고작 20건 단속…양보 안하는 '멋대로族' 많지만 모호한 규정 탓 적발 어려워
과태료 부과도 올 2건 그쳐

사고나면 소방관 책임…"촌각 다투는 위급 상황에서도 텅빈 반대편 차로 진입 망설여져"
'소방차 갈 때 좌우측에 정지' 등 명확한 기준 만들어 규제해야




지난달 15일 오후 5시29분, 서울 방학동 서울시 119특수구조단 특수구조대에서 구조버스가 사이렌을 울리며 급히 달려나갔다. 목적지는 7명의 사망자를 낸 노량진 배수지 수몰사고 현장. 구조차량들은 한 시간이 넘어서야 겨우 도착했다. 20㎞가 넘는 거리 탓도 있었지만 퇴근길 차량에 갇혀 속도를 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구조차량은 사이렌과 협조 안내를 부탁하는 방송을 계속 내보냈지만 상당수 운전자는 ‘나 몰라라’였다. 한 차량은 소방차 앞으로 끼어들기까지 했다. 한강대교 위에서 발이 묶인 구조차량의 영상을 본 네티즌들은 일부 운전자들의 얌체 운전에 분노했다.

대형 사고현장에 긴급 출동해 인명 구조에 나서야 하는 소방차 구급차 등 ‘119 긴급출동차량’들이 애매한 관련 법 규정과 사고 책임을 오롯이 소방차 운전자가 떠안아야 하는 불합리한 제도 탓에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다. 정부는 2011년 12월 긴급출동차량의 진로를 방해하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시행했다. 그러나 한 해 50만건이 넘는 119 출동 건수에 비해 단속 건수는 20여건에 불과해 법 취지가 무색하다는 지적이다. 단속 후에도 과태료 부과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과태료가 부과된 것은 작년 두 건, 올 상반기 세 건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소방관들은 출동 지연에 따른 심리적 부담과 함께 현장으로 급하게 달려가다 교통사고가 나면 벌금·벌점·면허정지 등 각종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한 해 50여만번 출동하는데

16일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지역 화재 구조 구급 출동 건수는 55만9997건이었다. 하지만 ‘긴급차량 진로 양보 의무 위반’으로 적발된 건수는 21건에 불과했다. 올 상반기 출동 건수도 27만5662건이지만 적발 건수는 22건으로 나타났다.

수십만건의 출동 건수에 비해 적발 건수가 적은 이유는 해당 운전자의 운전이 단속 기준에 맞는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단속 기준은 △제3자가 봐도 고의로 비켜주지 않는 경우 △좌우측으로 피할 수 있는데도 피하지 않는 경우 △소방차가 3회 이상 피해줄 것을 요구했는데도 피하지 않은 경우 등이다. 기준에 따라 단속된 차량은 승합차 6만원, 승용차 5만원, 이륜차 4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교통체증으로 피할 수 없거나 피하려고 하면 더 방해가 되는 경우 등은 단속에서 제외된다.

지난 7월 말 기준 서울 소방서별 적발 건수를 보면 성북 중랑소방서 5건, 중부소방서 4건 등으로 한 건의 단속 건수도 없는 소방서가 서울 23개 소방서 중 13개다. 서울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다급한 마음에 앞에 차량이 보이면 방해라고 생각했다가도 블랙박스로 다시 보면 애매한 경우가 있다”며 “고의성을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관련법이 개정됐지만 단속과 과태료 부과 기관이 소방서와 구청으로 나뉘어 있어 정작 위반 과태료 부과 건수는 더 적다. 입수한 긴급차량 진로 양보 의무 위반 과태료 부과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 후 과태료를 부과한 곳은 용산구(2건)밖에 없었다. 올해도 용산구 중랑구 중구만 한 건씩 과태료를 부과했다. 지난해와 올 상반기 진로 양보 의무 위반으로 적발된 운전자들도 자신의 위반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태료 부과 전산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 구청에 적발 사실을 통보해도 과태료 부과 기능이 없어서다.

서울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단속은 소방서에서 하지만 과태료 부과는 구청에 위임돼 있다”며 “서울시 교통위반관리시스템은 주정차 단속을 위주로 하는 프로그램이라 아직 진로 양보 의무 위반 차량 과태료 부과 기능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서울시 교통정보센터는 다음달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할 예정이다.

○출동 중 사고 나면 소방관 책임

소방관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소방차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내면 소방관들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온다. 일반 교통사고라면 종합보험을 통해 특별한 처벌을 받지 않지만 중앙선 침범이나 신호 위반과 연관된 사고에 대해서는 ‘11대 중과실 사고’로 인정돼 벌금이나 벌점, 면허정지 처분까지 받을 수 있다. 최병철 무학119안전센터 차량주임은 “출동을 나가면서 가려는 쪽은 막혀 있고 반대쪽은 원활하면 중앙선 침범을 하게 된다”며 “사고가 나면 내 책임인데 하는 생각에 망설여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생명을 위해 달려가는 것이 소방관”이라고 말했다.

일선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소방차 구급차 경찰차 등이 긴급 출동할 때 신호 위반, 중앙선 침범, 속도 위반 등으로 교통사고를 일으켜 업무상 과실치상이나 중과실 치상죄를 범해도 원칙적으로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교통사고처리특례법 개정안을 지난 3월 대표 발의했다. 진 의원은 “현재 긴급자동차 운전자들이 사고를 내도 일반자동차 운전자와 동일한 기준으로 처벌받는데 이는 적극적 업무 수행에 장애가 되고 국민 불이익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며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홍보·교육 확대하며 단속 강화해야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긴급출동차량이 달리고 있을 때 양보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교육 부족으로 정확한 양보 방법을 모르는 게 현실이다.

운전면허를 취득할 때 받아야 하는 안전교육에서도 긴급출동차량이 도로에 있을 때는 양보를 해야 한다는 문구뿐이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면허시험장과 전문학원 등에서 안전교육을 하지만 자세한 양보 방법까지는 교육을 하고 있지 않다”며 “긴급출동차량이 뒤편에서 나타나면 진행 방향의 오른쪽 차로로 비키는 것이 올바른 양보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단속 규정을 보다 명확하게 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15년간 소방관으로 재직했던 정기성 원광대 소방행정학부 교수는 “양보 의무 위반 상황에서 운전자가 고의성이 없었다고 항의하면 판단하기 곤란하다”며 “현재 단속 기준에 3회 이상 양보 지시를 하라고 돼 있지만 사이렌과 경광등을 울리고 출동할 때는 이미 양보를 요청하고 있다고 봐야 하므로 국민 안전 차원에서 출동 방해 기준을 넓게 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양보를 하라는 내용도 모호해 ‘소방차가 출동할 때는 좌우측으로 즉시 정지하라’ 등 구체적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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