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의료산업 국제화에 필요한 것

입력 2013-08-18 17:20   수정 2013-08-18 20:58

"의료는 소중한 생명 다루는 분야
외국인 의료관광객 유치에 앞서
환자 권익 보호체계부터 갖춰야"

김화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교수



만일 우리나라의 어떤 기업이 해외에 나가서 크게 성공을 하고 그 결과 국내에서도 납세를 많이 하고 고용도 창출했는데, 그 비결이 현지에서의 불법과 부정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비판이나 처벌을 받게 될까.

미국에는 ‘해외부패행위방지법’이라는 법률이 있다. 미국 기업이 해외 사업을 할 때 현지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공여하거나 기타 부정한 방법을 쓰지 못하게 하는 법이다. 과거 ‘후진국’에서 현지 관리들과 유착하면서 돈을 많이 번 미국 기업들이 있었는데 그런 행동을 현지법이 규제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본국인 미국법으로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재계의 윤리와 정직성을 위한 것이다. 남의 나라를 어지럽히면서까지 돈을 벌 수는 없다는 자부심도 보인다. 1977년에 만들어진 이 법은 종이호랑이가 아니고 실제로 잘 집행된다.

맥락은 다르지만 비슷한 이야기가 요즘 미국에서 흘러나온다. 미국인들의 해외 의료관광에 관한 것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의료규제가 가장 엄격한 나라여서 안 되는 것이 많고, 매사 오래 걸리고, 비싸다. 그래서 장기기증을 기다릴 수 없는 부유한 환자, 중병에 걸렸지만 보험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가난한 환자, 심지어는 고통을 끝내고 죽고 싶은 환자들이 외국으로 나간다. 스위스에서는 조력자살이 합법이다. 이렇게 연 200만명이 나간다는 추계가 있다. 민간 보험회사들도 적극적으로 의료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수술이 잘못되면 100만달러를 보상하는 보험이 1만달러 내외다. 한 자료에 따르면 심장수술 비용이 미국은 21만달러, 태국은 1만2000달러라고 한다.

인도, 태국, 싱가포르를 포함한 여러 나라가 의료관광산업 육성에 적극적이다. 피지 정부는 미국의 저명한 대학 교수들을 고문으로 위촉하기까지 했다는 소식이다. 문제는 이 추세가 ‘관광지’에 미치는 영향이다. 우선 장기기증을 과하게 조장한다. 필리핀에서는 신장을 기증하면 3300달러 정도를 받는다고 하는데 그나마 알선업자들이 많이 편취한다. 우수한 의료진이 내국인보다는 외국인 치료를 선호하게 되는 문제가 있고, 현지 의료업계 종사자들의 저임금을 이용해 노동을 착취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있다. 해외부패행위방지법의 경우와는 달리 주로 윤리적인 문제들이다. 또 의사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미국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줄기세포 치료를 받기 위해 아이를 해외로 데리고 나가겠다는 부모를 말려야 하는지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코헨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 정부가 미국인들의 의료관광을 규제한다면 보험이 없어서 나가는 저소득층만 불이익을 받게 되고, 나아가 미국이 전 세계 의료산업의 암시장화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고 진단한다.

우리는 국내 의료전문가들의 뛰어난 실력을 최대한 활용해서 특히 의료관광을 통해 의료산업을 성장시키는 데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이 필요하다는 논란을 오래 전부터 해오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앞으로 우리 국민이 의료관광객이 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이미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국민이 외국에 나가서 하는 행동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무관심하고 물의가 일어나도 대단히 관대하다. 하물며 법과 규제는 먼 이야기다. 그러나 수준 높은 국가라면 윤리적 의식은 있어야 한다. 물론 국내 의료환경이 미국처럼 돼서 국민이 의료관광객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다른 분야와 달리 의료분야는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관광을 나가든, 관광객을 맞든 병이 난 사람인 환자를 다루는 분야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목적을 떠나서, 사고나 분쟁 발생 시에 외국인 환자와 가족의 권익을 잘 지켜주는 시스템도 꼭 필요하다. 사법제도가 잘 정비된 곳에 국제투자가 일어나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미국이 미국인들의 의료관광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국민이 위험한 곳으로 갈 때 정부가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의료에 ‘산업’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과연 옳은지도 잘 모르겠지만 의료산업 국제화 논의에서는 이 점이 잊혀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화진 <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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