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파버와 루비니 '블랙먼데이 재연설' 논쟁

입력 2013-08-18 17:34   수정 2013-08-18 21:25

작년 8월 1차 논쟁 버핏 승리…2차 논쟁 루비니 낙관론 주목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미국 월가의 ‘3대 비관론자’로 마크 파버 글롬봄앤드돔 발행인, 빌 그로스 핌코 최고투자책임자(CIO),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꼽힌다. 1년 전에는 그로스와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 간 미국 증권시장의 앞날과 관련한 ‘주식 숭배’ 종료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논쟁을 요약하면 이렇다. 그로스는 주식 숭배는 끝났다고 단언하면서 미국 국채 등 채권에 투자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버핏의 생각은 달랐다. 주식을 사두는 것이 유망하다고 밝히면서 자신이 운영하는 벅셔해서웨이의 주식 보유 비중을 저가 매수 차원에서의 ‘체리 피킹(cherry picking)’ 종목에서 벗어나 경기에 민감한 업종을 중심으로 대폭 늘렸다.

잊혀가던 이 논쟁이 다시 화두가 된 것은 그로스가 ‘미국 국채 강세장은 올 4월 말로 끝났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130bp(1bp=0.01%포인트) 정도 급등했다. 그만큼 채권가격이 폭락했다는 의미다. 같은 기간 중 다우존스지수는 무려 3000포인트 넘게 올랐다.

투자자 성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경향’과 ‘위험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1년간 두 사람의 명암이 엇갈렸던 것은 투자자 성향이 전자에서 후자로 옮겨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최근에는 채권에서 증시로 ‘머니 무브(자산 이동)’를 뛰어넘어 ‘대전환’으로 진전될 수 있느냐가 월가의 최대 관심사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세계 증시는 정책적으로나 주가 수준면에서 전환점을 맞고 있다.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의사와 관계없이 출구전략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블룸버그 등이 월가의 이코노미스트를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여름 휴가철이 끝나는 다음달에 출구전략이 추진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50%를 넘고, 대부분 연내에 추진될 것으로 보고 있다.

주가 수준에 대해서도 ‘비이성적 과열’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비이성적 과열은 1996년 주가가 거침없이 오를 당시 Fed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이 처음 사용한 용어다. 이 발언 직후 미국 주가는 20% 폭락했다. 정도 차는 있지만 대부분 월가의 시장 참여자들도 현재 주가 수준이 경제 여건에 비해 높다고 인식하고 있다.

1년 전 그로스와 버핏 간 논쟁 당시만 하더라도 그로스의 손을 들어주는 투자자가 많았다. 요즘은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다. 1차 논쟁의 승자인 버핏 등은 비교적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3대 비관론자 중 나머지 두 사람, 파버와 루비니 간에 2차 월가 논쟁이 일고 있어 다른 각도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파버는 지금의 주가는 ‘비이성적 과열을 우려할 만한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갈수록 주가의 고공행진을 떠받쳐온 ‘부채의 화폐화’, 즉 Fed가 국채 등을 매입해 돈을 푸는 양적완화와 초저금리 정책은 더 이상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릴 수밖에 없어 1987년 블랙먼데이처럼 주가가 폭락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 대해 루비니의 주장은 다르다. 아직도 투자자의 귀를 의심케 하고 있지만 올 4월에 열린 밀켄 콘퍼런스(일명 미국판 다보스포럼) 이후 “앞으로 2년 동안 주식이 가장 유망하다”며 주식을 가능한 한 많이 사둘 것을 권했다. 그후 헤지펀드 거물인 데이비드 테퍼 등의 증시 낙관론이 줄을 잇고 있다.

‘루비니 패러독스’라고 불릴 만큼 워낙 예상치 못했던 발언이어서 배경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루비니는 증시 낙관론을 펼치는 근거로 ‘경제 정상화 역설’을 들고 있다.

현재 물가는 월마트 효과와 셰일가스 개발 등으로 비교적 안정돼 있는 반면 주가 등 자산가격은 많이 오르고 있다. 하지만 실물경기는 기대만큼 회복되고 있지 못하다.

이 때문에 거품이 우려되는 자산가격을 잡기 위해 긴축을 단행하면 실물경기가 침체되고, 실물경기를 추가로 부양하면 자산가격이 더 올라 거품 우려가 현실화된다. 1980년대 초 실물경기는 안 좋은데 물가가 올랐던 스태그플레이션 상황과 비슷하다. 물가만 자산가격으로 바뀌는 새로운 형태의 스태그플레이션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금의 정책기조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루비니 교수가 증시 낙관론을 펼치는 배경이다. 오히려 경제가 정상화되면 출구전략을 추진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거품이 붕괴돼 투자자는 커다란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직장인이 요즘처럼 생애가 길어진 시대에서는 ‘만년 과장’에 머물러 있는 것이 좋을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루비니가 주장하는 증시 낙관론은 미국 경제가 좋아져서가 아니라 양적완화와 출구전략이 동시에 필요한 상황을 절묘하게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설령 미국 경제가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질적으로는 더 악화돼 지속가능 성장기반이 훼손될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증시 낙관론으로 선회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파버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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