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최명수 문화부장
유진룡 장관
"문화 즐기는 유효수요 늘리면 자연히 고부가 산업 발전…문화접대비 1% 안 돼도 稅혜택"
박병원 회장
"콘텐츠 파는 화랑·서점 등 장사꾼 취급 풍조는 곤란…대기업 참여·세계시장 겨냥해야"
새 시대의 화두는 문화다. 박근혜 정부는 3대 국정 기조 가운데 하나로 ‘문화 융성’을 내세웠다. 하지만 ‘국민의 삶 속에 문화가 녹아들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쉽사리 답하기 어렵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문화는 어떤 위상을 갖고 있을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답을 듣기 위해 문화정책을 총괄하는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박병원 은행연합회장을 함께 만났다. 경제관료 출신인 박 회장은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으로서 문화·예술 분야에 애정을 갖고 있다. 대담은 서울 와룡동 문체부 청사에서 최명수 한국경제신문 문화부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사회=두 분이 언제 처음 만나셨습니까.
▷박 회장=제가 2001년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을 할 때 제조업으로는 더 이상 경제 발전과 일자리 창출이 힘들다, 산업에 문화예술을 접목시켜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국민소득이 2만달러에서 4만달러로 늘더라도 하루 세 끼 먹던 걸 여섯 끼로 늘릴 수는 없거든요. 산업의 중심축을 제조업에서 서비스산업으로 옮겨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분야가 문화·예술·관광입니다. 그러다 보니 문화관광부와 협조할 일이 많았어요. 당시 문화산업국장이었던 유 장관과도 만나게 됐고요.
▷유 장관=그때 문화부와 정통부 사이에 콘텐츠산업과 관련된 일종의 자리 싸움이 있었는데 당시 박 국장께서 잘 정리해주셨어요. 재경부 차관으로 계실 때는 제가 문화부 차관으로서 남북 경제협력차 북한에도 여러 차례 함께 갔고요. 제가 장관에 취임한 이후에도 문화가 경제적으로 시장에서 어떻게 자리잡아야 하는지 자주 말씀해주시고 있습니다.”
▷사회=국정 기조인 문화 융성이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유 장관=문화 융성은 문화예술 진흥은 물론 그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의 정신적 기반을 세우는 것입니다. 개인이 행복해질 수 있는 수단이자 문화가 지향하는 가치를 통한 사회통합의 방법이기도 하죠.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목표와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박 회장=인류 역사에서 문화가 융성한 시기를 보면 경제적 성장과 맞물려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문화 발전이 이뤄지면 다시 문화적 저력을 기반으로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것이죠.
▷사회=문체부는 문화 융성을 위해 어떤 정책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나요.
▷유 장관=한마디로 문화의 ‘유효수요’를 늘리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마른 땅에 물을 뿌리는 정책이었다고 생각해요. 물을 뿌릴 때만 땅이 젖어 있을 뿐 금방 마르잖아요. 먼저 문화를 즐기는 사람의 숫자를 늘리고 나면 산업도 발전할 수 있습니다. 산업이 커져 다시 문화 향유 인구가 증가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박 회장=우리 문화예술계는 공급 과잉 상태예요. 문화 융성을 위해 절실한 것은 자발적 수요입니다. 1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전국 초·중·고교에서 음악 미술 시간에 실기 교육 대신 감상 교육을 강화하는 거예요. 오디오로 듣던 음악을 공연장에서 듣고 싶도록 하고, 슬라이드로 본 그림을 전시장에서 보고 싶도록 하는 거죠. 내수 진작을 위해 문화예술 지출에 대해 소득공제해주는 것도 방법입니다.
▷사회=재정경제부에 계실 때 그런 대책을 시도해보셨습니까.
▷박 회장=사실은 2004~2005년에 문화예술 진흥 방안을 내놓기는 했는데 세제 혜택 설계를 잘못했는지 크게 효과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세제실이 전향적으로 생각해줘야 할 필요는 있어요. 정책 목표를 달성한 부분에서 세제 혜택을 줄이더라도 새롭게 정책 목표로 떠오른 분야는 혜택을 줘야죠. 당장은 세수가 줄어들지라도 문화예술 분야에 세제 혜택을 줘서 시장이 커지면 전체적으로 걷는 세금은 더 늘어나거든요.
▷유 장관=2000년대 이후 문화예술 지출에 대한 소득공제를 계속 주장해왔지만 경제정책을 입안하는 부처에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지난 정부에서도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업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대부분 정책은 제조업, 토목 위주였고요. 이번 정부에서는 조금 변하기 시작했지만 더 빨리 바뀌어야죠. 현재 기업들이 접대비 가운데 1% 이상을 문화접대비로 쓸 경우 세제 혜택을 주고 있는데 이번 세제 개편안에는 1%를 넘지 않아도 인정해주는 내용이 들어 있어요. 과거보다는 발전한 셈입니다. 저희 역할은 문화예술에 대한 친근감을 키워 유효 수요를 늘리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꾸는 겁니다.
▷사회=내년이면 콘텐츠산업 매출이 100조원을 넘어설 전망입니다.
▷유 장관=생산 부문은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투자 지원과 인프라 구축 정도가 정부의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부 분야는 수요 기반이 약한 상황입니다. 게임이나 영화는 수요층이 튼튼하지만 애니메이션의 경우 제작비가 적잖게 드는 반면 이를 틀 수 있는 채널이 부족해요. 방송사에 국산 애니메이션을 의무 편성하도록 해놨으나 새벽에 방영하는 식으로 피해가는 문제도 있고요. 아무리 잘 만들어도 유효 수요가 늘어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박 회장=우리 사회에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은 떠받들고 지원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반면 이를 팔아주는 사람은 장사꾼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풍조가 있는 것 같아요. 화랑이나 공연기획사, 서점 등 전통적으로 콘텐츠를 유통하는 영역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사회=콘텐츠산업 발전 과정에서 대기업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유 장관=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가령 CJ나 롯데 등 대기업이 영화 스크린을 독점한다는 지적이 있어요. 그런 측면도 분명 있지만 이런 기업이 아니었으면 극장이 그렇게 많이 생기지 못했을 거예요. 미국은 1948년 파라마운트 판결 이후 영화 제작·배급·상영의 수직적 통합을 금지했어요. 국내에선 시장 규모를 감안할 때 뭐가 더 바람직한지에 대한 연구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박 회장=독점의 1차 폐해는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하는 것인데 스크린은 오히려 공급 과잉이에요.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영화를 지금은 1주일에 한 번씩은 볼 수 있잖아요. ‘대기업이 아니면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국내 시장만 놓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제조업이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선 것은 세계적 대기업으로부터 돈과 기술을 빌리면서 차근차근 따라잡았기 때문이에요.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기업, 외국 기업에 문을 열어 놓고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사회=내년부터 대체휴일제가 시행됩니다. 재계에선 경영 환경이 악화된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유 장관=기본적으로 놀아야 유효 수요도 생길 수 있어요. 돈을 버는 게 문제가 아니라 쓰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서비스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대체휴일제를 적극 도입해 정부에서 시범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 회장=저는 야근이나 휴일근무 등 추가 근무를 줄이는 게 더 시급하다고 봐요. 불필요한 추가 근무를 줄이면 일자리도 늘릴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하루에 12시간 일하는 대신 8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4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새로 일자리가 생기잖아요. 여름에 집중돼 있는 휴가를 봄, 가을, 겨울로 분산한 것도 내수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사회=지난 6월 영종도 외국인 전용 카지노 불허 판정을 내렸는데, 어떤 문제가 있었나요.
▷유 장관=건실한 업체가 카지노 건립 신청을 하면 외국 업체라도 얼마든지 허가를 내줄 용의가 있습니다. 이번에 신청한 업체들은 자금 성격에 문제가 있었고 신용등급 조건도 충족하지 않아 불가피하게 반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리=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1956년 인천에서 태어난 행정고시 22회 출신. 서울고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나와 1979년 문화부 사무관을 시작으로 20여년간 문화부에서 근무한 정통 문화행정 관료다. 문화관광부 공보관, 문화산업국장, 기획관리실장, 차관 등을 역임했다. 2010년에는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내정됐지만 적격이 아니라며 고사했다. 을지대 부총장에 이어 지난해 9월부터 가톨릭대 한류학원 초대 원장으로 일했다. 저서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이해’와 ‘예술경제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박병원 은행연합회장
1952년 부산 출생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나왔다. 경제정책과 예산 분야 요직을 두루 거친 정통 엘리트 경제관료이자 거시경제정책 전문가로 손꼽힌다. 행정고시 17회로 공직에 입문해 재정경제원 예산총괄과장,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차관보·제1차관 등을 맡았다.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청와대 경제수석 등도 역임했다.
2011년 11월 은행연합회장에 취임했고 박근혜 정부 들어 채무 불이행자의 재기를 돕기 위해 새로 만든 국민행복기금 이사장에 임명됐다. 외국어와 문학, 미술, 음악 등 예술 분야에 두루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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