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경영 팔 걷은 기업] 삼성, 임직원-협력사 만남 엄격히 통제…접대·향응 등 비리 원천 차단

입력 2013-08-19 15:29  


“같이 가시죠. 안성까지 오셨는데, 근처에 잉어찜 잘하는 곳이 있습니다.”

새벽 같이 출발하느라 출출했지만 ‘아니요’라며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3월 ‘삼성판 강소기업’ 취재를 위해 방문한 경기 안성에 있는 신흥정밀에서 생긴 일이다. TV 프레임 등을 만드는 이 회사는 삼성전자의 대표적인 협력사로 전 세계에 16개 법인, 25개 사업장을 갖고 있다.

회사를 소개해준 삼성전자 직원과 함께 아침 일찍 도착, 정우석 부사장으로부터 회사 브리핑을 받았다. 공장을 둘러보고 취재를 마무리하고 나니 정오가 조금 넘었다. 정 부사장은 “예약까지 해놓았다”며 식사할 것을 권했지만, 응할 수 없었던 이유는 삼성전자 직원이 동행했기 때문이다.

◆청탁·향응 금지한 비즈니스 가이드라인

삼성전자는 ‘비즈니스 가이드라인’을 정해 임직원과 협력사와의 만남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제대로 된 부품을 받으려면 유착이나 비리 등 부정이 있어선 안된다는 차원이다. 만약 비리 등이 발견되면 가차없이 임직원을 징계하며, 해당 협력사와는 거래를 끊는다.

9개항으로 짜여진 이 가이드라인은 △어떤 뇌물도 받지않는다 △과도한 식사 및 골프 접대 등 향응을 받지 않는다 △부당한 청탁을 하지 않는다 △거래처의 지분을 취득하지 않는다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특히 금지 행위를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과도한 식사’란 일식당, 한정식집, 호텔 등 고급식당 등에서 접대받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해 놓았다. 또 업무상 거래업체와 식사가 필요한 경우 비용은 삼성전자에서 부담하라고 적시했다.

‘뇌물’의 범위도 금전과 현금성자산, 선물로 구체화했다. 이를 현금, 수표, 경조금(축하금·조의금), 백화점상품권, 항공권, 회원권, 문화상품권, 공연티켓, 놀이공원 이용권, 법인카드, 기프트카드, 자동차, 귀금속, 명절선물 등으로 일일이 나열했다. 부당한 청탁의 예로는 협찬 요구와 회식비용 전가, 거래처 차량 무단사용, 주택 등의 임대차 강요, 지인 채용 요구를 포함시켰다.

이 가이드라인은 삼성 전 계열사에 적용되고 있으며 모든 직원이 볼 수 있게 내부 인트라넷인 ‘싱글’에 올려놓았다. 또 각 계열사는 추석, 설날 등 명절 전후 수시로 선물 등을 보내지 말라는 내용을 협력사에 재고지한다. “귀사로부터 선물 등이 전달될 경우 해당 임직원은 내규에 따라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우리 임직원이 선물을 먼저 요구하는 일이 있으면 감사팀 직통전화(1577-7988)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설 명절을 앞둔 지난 1월29일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가 협력사포털(www.secbuy.co.kr)을 통해 밝힌 내용이다.

◆정도경영은 삼성의 핵심가치

삼성의 윤리·준법경영은 뿌리 깊다. 삼성은 정도경영을 인재제일, 최고지향, 변화선도, 상생추구와 더불어 핵심가치로 삼고 있다. 경영원칙에도 ‘법과 윤리를 준수한다’, ‘글로벌 기업시민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 등의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2011년 4월부터 5월까지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모든 계열사들이 차례로 준법경영선포식을 열고 전 임직원들이 준법실천 서약서를 작성하며 준법의지를 강화해왔다. 지난 2월엔 그룹 내 모든 계열사의 사장과 임원 평가에 준법경영지수를 엄격하게 반영하기로 했다. 업무 실적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준법경영지수가 낮게 나오면 승진 탈락 등의 불이익을 주겠다는 뜻이다.

이처럼 삼성이 준법경영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은 사업 규모가 글로벌 수준으로 커지면서 평판리스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국내에서는 불산 누출 사고를 겪으면서 온갖 곤욕을 치렀고, 중국에서는 협력사 아동노동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최근 불량 볼트 사용으로 물탱크가 파열돼 인명 사고가 발생하면서 사장이 경질되기도 했다.

이 같은 사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기업 경영에 엄청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2010년 가속페달 결함사고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가 대규모 리콜 사태를 맞고 사장이 미국 의회 청문회에까지 불려나가며 몸살을 앓은 일본 도요타가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파이어스톤 타이어는 2000년 포드 차량에 납품했던 타이어들이 주행 중 펑크가 나면서 수십명의 인명사고를 내는 바람에 망할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류한호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는 “사회 규범이 요구하는 것보다도 사내 준법 수준을 높이고 임직원들의 과거 마인드를 바꾸는 게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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