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못해" 회식 요리조리 내빼던 그분, 알고 보니 취미가 술 담그기
자상한 아빠의'탈'을 쓰고…
우연히 보게된 김과장 스마트폰…낯선 여성들과 '늑대 본성' 채팅
김 주임의 은밀한 이중생활
아무생각 없이 사는줄 알았는데 안 보이는데서 피나는 자기계발
A 보험사에 다니는 김 과장(여·31)은 평소 깔끔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사내 MT에서 ‘가장 깨끗할 것 같은 직원’으로 뽑혔을 정도다. 옷차림이 항상 단정한 것은 기본. 책상 위는 먼지 한 톨 없는 것처럼 윤이 난다. 반짝반짝 빛나는 책상을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물휴지로 닦는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김 과장의 집을 방문한 후배 윤 대리(여·29)는 깜짝 놀랐다. 그가 사는 원룸이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던 것. 침대 이불은 몸만 빠져나온 그대로였다. 소파엔 벗어 던진 옷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부엌엔 먹다 남은 멜론을 그대로 내버려둬 벌레가 들끓었고, 며칠째 설거지를 안해 그릇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경악하는 윤 대리에게 김 과장은 털어놓았다. “회사에선 연기하느라 너무 힘들다”고
현대사회의 인간은 누구나 여러 개의 역할 또는 정체성을 갖는다. 낮에는 부유한 기업가, 밤에는 범죄가 끊이지 않는 고담시를 지키는 슈퍼 히어로로 살아가는 배트맨까지는 아니더라도 내면의 욕망과 외부로부터 주어진 역할 사이의 충돌은 누구나 한번 쯤 겪는다. 직장인들의 이중생활을 들여다봤다.
○회사에선 빈틈없던 그의 변신
대기업 B사에 근무하는 미혼의 커리어우먼 이 차장(여·39). 맡은 일을 열정적으로 완벽하게 처리해내는 데다 패션 센스 또한 남다르다. 남성 직원들의 구애가 끊이지 않는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하지만 빈틈없는 차가운 성격 때문에 정작 다가가기는 어렵다고.
어느 날 같은 팀 후배 김 대리(남·33)는 서울 이태원의 한 술집에서 우연히 이 차장을 발견하고 입이 쩍 벌어졌다. 연신 줄담배를 피우며 일행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의 입에선 비속어와 욕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러던 중 집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더니 여성스럽고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회사 회식 중인데 일찍 들어갈게요. 어머니 먼저 주무세요.” 회사에서 모습 그대로였다.
같은 회사 이 대리(여·30)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와 같은 팀에서 근무하는 결혼 3년차 김 과장(남·37)은 평소 가정적이고 반듯한 이미지를다. 업무도 꼼꼼하게 잘 가르쳐줘 이 대리는 김 과장을 존경하고 따랐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김 과장의 스마트폰 메시지를 보게 된 뒤부터 존경심이 실망으로 180도 바뀌었다. 김 과장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조용한 사무실에 그의 스마트폰 메시지 알람이 계속 울려대자 팀 막내인 이 대리는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알람을 끄기 위해 무심결에 본 메시지는 이 대리를 ‘멘붕(멘탈붕괴)’ 상태에 빠뜨렸다. 내용이 “오빠 몇 살이에요?ㅋ 어떤 차 타는데요? 저는 잠실 살아요” “하이, 난 설(서울) 사는 22(살) 여, 오늘은 안 되고 담주 콜?” 등이었던 것. 한눈에 봐도 낯선 20대 여성들과 한창 ‘작업’ 중인 채팅 메시지였다. 이후로 이 대리는 김 과장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는 틈만 나면 엘리베이터 입구 등에서 채팅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술은 나의 적”…취미는 술 담그기?
중소기업 C사의 장 이사(남·55)는 회식 자리에서 늘 술이 약하다며 먼저 내뺀다. “간이 좋지 않다” “원래 술이 약하다” “보리밭 옆만 지나가도 취한다”는 등 약한 주량을 핑계로 폭탄주를 요리조리 피해간다.
하지만 얼마 전 직접 담근 술을 판매하는 한정식집에서 회식을 하다가 그의 정체가 탄로 나고 말았다. 식당 한쪽에 진열된 담금주를 보고 장 이사가 입맛을 다신 것. 급기야 식당 주인에게 술 담그는 요령 등을 캐묻기 시작했는데 술에 대한 지식이 전문가 뺨치는 수준이었다. 알고 보니 장 이사의 취미는 과일은 물론 몸에 좋다는 것이면 무엇이든 술로 만들어 마시는 것이었다.
‘식물도감 박사’로 불릴 정도로 산나물 약초 등에 정통할 뿐 아니라 재료마다 우러나오는 시기와 알코올 도수까지 꿰차고 있었다. 정체를 들켜버린 장 이사는 이후 편하게 술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요즘 블루베리가 슈퍼푸드라고 해서 블루베리주를 담그는데 이게 잘 우러나지 않아서 걱정이야. 성공하면 내가 우리 팀에 블루베리주로 한턱 쏠게.”
대기업 D사에 다니는 이 대리(남·29)는 별명이 ‘폭탄주계의 기린아’다. 팀 회식 때마다 에너지 음료인 파워에이드와 핫식스, 소주를 조합해 만든 소위 ‘에너자이저주’를 돌려 팀원 대부분을 불과 10분 만에 무장해제시킨다. 최근엔 신종 폭탄주 ‘울끈불끈주(스타우트(흑맥주)+박카스+코카콜라)’를 선보이며 회식 자리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은 팀의 유 과장(남·33)은 친구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호텔 결혼식장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같은 호텔에서 프랑스 와인제조업체 주최로 열린 ‘와인 메이커스 디너’에 참석한 이 대리를 딱 마주친 것. 그날 이 대리의 모습은 평소 그가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말끔한 블랙 정장에 빨간색 나비넥타이를 매고 옅은 미소를 띠며 와인을 홀짝거리고 있었다. 유 과장은 “우아한 그의 모습에 정신없이 폭탄주를 돌리던 장면이 오버랩되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욕심 없어 보였던 그의 가열찬 자기계발
E 은행 김 주임(남·30)은 조용하고 말수도 적은 편이다. 평소 업무하는 방식이나 성품을 보면 주어진 일만 할 뿐 승진에 대한 욕심도 없어 보였다. 때문에 그가 저녁 6시만 되면 30분씩 자리를 비운다는 것을 눈치챈 팀원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걸려온 전화 한 통에 팀원들은 깜짝 놀랐다. ‘Hello’로 시작하는 전화 통화가 무려 5분 이상 이어졌던 것. 어휘는 물론 발음까지 그는 완벽한 ‘네이티브 스피커’로 빙의했다.
알고 보니 그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저녁 빠짐없이 영어학원 자격증학원 등에 다니고 있었다. 6시만 되면 자리를 비웠던 이유도 전화영어 수업을 위한 것이었다고.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 같다”고 혀를 찼던 선배와 동료들은 이후 그를 존경과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
전설리/박신영/전예진/황정수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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