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뛰는 금융지주] 저성장의 터널…해외진출·비은행부문 확대로 돌파

입력 2013-08-20 15:34  

저성장·저금리 시대…금융지주사, 새 성장활로 모색

새 수장들 리더십 안정화 단계…지배구조 개편도 일단락
도약 위한 전열 정비에 주력




최수현 금융감독원장과 금융지주사 회장 간 간담회가 열린 지난달 25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으로 들어서는 지주사 회장들의 표정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은행은 물론 증권사 보험사 캐피털 저축은행 등을 거느린 지주사 회장들의 얼굴에서는 ‘저성장의 터널은 과연 언제 끝날 것인가’ 하는 고뇌가 엿보였다.

금융지주사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대내외 경제환경이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세계적으로는 미국 양적완화, 중국 경제의 둔화 가능성 등 불안 요인이 상존한다. 내수 부진과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로 국내 여건도 어둡기만 하다. 우리 경제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저성장·저금리’ 시대로 급속히 진입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런 대내외 여건은 금융권 전반에 걸쳐 성장성과 수익성의 급격한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가까운 시일에 실적 회복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지금은 마른 수건을 더 쥐어 짤 방안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거나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하면서 버텨 나가야 한다”(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고 먹구름이 걷힐 때까지 앉아서 기다릴 여유는 없다.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활로를 개척해야 한다. 지주사들은 동남아를 중심으로 한 해외 시장 진출과 증권 보험 등 비은행 부문의 비중 확대를 핵심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를 지원하려는 금융당국의 의지도 그 어느 때보다 강한 편이다.

○실적은 반토막-탈출구는

금융지주사의 실적 악화는 사실 예상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핵심 자회사인 은행 보험사 증권사 등의 실적이 특히 나빠지고 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금융사 본연의 자금 중개 기능이 약해지는 것은 물론 기업 및 가계의 구조조정에 따른 손실 흡수 능력이 사라져 금융 시스템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지주사의 핵심 동력인 은행은 2분기 연속으로 당기순이익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국내 18개 은행의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절반 수준인 1조1000억원에 그쳤다.

이 같은 실적 악화는 저금리 기조로 순이자마진(NIM)이 줄어든 데다 기업 구조조정 여파에 따른 부실이 늘어난 탓이다. 은행권에서는 STX 쌍용건설 등 구조조정 기업의 부실 여신으로 인해 충당금을 본격적으로 쌓아야 하는 하반기에는 이익 규모가 더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증권사도 마찬가치다. 2012 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 순이익은 1조2300억원으로 전년(2조2100억원)보다 44.3% 감소했다. 일부 생명보험사는 조달금리가 운용수익률을 웃돌아 역마진을 보는 경우도 있다.

○재도약 진용 갖춘 금융지주사들

공교롭게도 금융지주사의 실적 악화는 회장들이 잇따라 교체되는 상황과 맞물려 현실화했다. 사실 올해 초만 해도 우리금융 KB금융 산은금융 등에서는 리더십 공백 사태가 빚어졌다.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회장들의 거취가 불투명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은행 증권 보험 등 주력 자회사의 관심은 온통 ‘인사’에만 묶여 있었다. 저금리·저성장의 어두운 터널 속으로 진입하고 있는 위기가 다가왔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는 노력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임기를 남겨두고 있던 전임 회장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물러나거나, 연임에 나서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물갈이 인사가 이뤄졌다. 정부가 주인인 우리금융과 산은금융은 이순우 회장과 홍기택 회장이, KB금융은 임영록 회장이 각각 선임됐다. NH농협금융도 임종룡 회장이 새로 사령탑에 올랐다.

금융지주 수장에 오른 회장들은 이후 대대적인 자회사 인사를 통해 자신의 리더십을 구축했다. 대내외 환경 악화에 따른 급격한 실적 부진 속에서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금융지주사들의 리더십이 이젠 안정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지주사들은 정권 교체기 최대 불확실성이었던 지배구조 개편이 일단락된 만큼 이젠 위기 극복과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전열을 정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주사 회장들로서는 이제부터 경영 능력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도 적지 않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각기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새로 선임된 회장들은 이제 시험대에 올려진 셈”이라고 말했다.

○“해외로 나간다”

금융지주사들은 위기 극복 방안으로 적극적인 해외 진출과 인수합병(M&A)을 통한 비은행 부문 강화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우선 동남아 시장을 중심으로 한 신흥국 진출 전략을 재정비하고 있다.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이 핵심 대상국이다. 이들 국가를 비롯한 신흥 금융시장은 여전히 적정한 수익을 낼 수 있는 시장으로 여겨지고 있다.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선진 금융사들의 성공적인 진출 사례를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며 “좁은 국내 시장에서 비슷한 영업 행태로 수익을 내는 데 한계에 다다를 만큼 해외 진출은 피할 수 없는 생존과 성장의 전략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지주사들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이 해외 진출 지원에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최근 간부들에게 “그동안의 행태를 보면 금융회사에 해외로 진출하라고 말만 할 뿐 금융당국이 적극 도와주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금융당국이 해당 국가 당국과 직접적인 접촉 등을 통해 적극 지원하라”고 주문했다. 금융위는 수익 기반 확충을 위한 금융사의 해외 진출 지원 방안을 10월께 발표할 ‘금융 비전’에 담기로 했다.

○사업다각화·비은행 강화로 ‘돌파구’

우리금융 민영화는 역설적이게도 다른 금융지주사에는 신성장 동력을 확보할 기회가 되고 있다. 정부는 △지방은행(경남·광주은행) △우리투자증권 등 증권 계열사 △우리은행 등 단계적으로 나눠 시장에 매각하기로 했다.

지주사 간 인수 경쟁은 벌써부터 가열되고 있다. 경남은행 인수전에는 BS금융과 DGB금융이 출사표를 던졌다. JB금융은 광주은행 인수전 참여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경남은행과 광주은행의 향배는 30여년간 경쟁 구도가 굳어졌던 지방은행의 판도를 뒤흔들 변수인 만큼 금융지주사들은 사활을 걸고 인수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우리금융의 핵심 계열사로, 증권업계 2위권인 우리투자증권 인수전에는 KB금융과 NH농협금융이 뛰어들었다. 엘리트 재무관료를 지낸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임종룡 NH농협금융 회장은 개인적 친분을 떠나 이번 인수전에서 ‘한판 승부’를 벌인다.

두 지주사가 우리투자증권 인수에 나선 이유는 은행과 국내 영업에 쏠린 지주사의 사업모델을 적극 개선하는 게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작년 말 기준 국내 10개 은행지주사 총 자산 1828조7000억원(연결 기준) 가운데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1564조5000억원으로 85.6%에 달한다. 물론 증권업계 선두권 회사인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해 비은행 부문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으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금융권에서는 이제는 은행만으로는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는 만큼 우리투자증권을 누가 가져가느냐에 따라 해당 지주사의 위상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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