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수입차업계에 한국인 CEO 씨가 마른다

입력 2013-08-21 10:15  

"최근 수입차 CEO(최고경영자)가 외국인으로 많이 교체됐어요. 한국인이 새로 사장을 맡은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한국인 사장의 입지가 앞으로 더 줄어들겠지요." (자동차 업계 관계자)

수입차 업계에 외국인 CEO 취임이 늘고 있다. 최근 1년 사이 수입차 사장 자리엔 대부분 외국인으로 교체됐다.

브리타 제에거 사장(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데이비드 맥킨타이어 사장(재규어 랜드로버 코리아), 요하네스 타머 사장(아우디 코리아), 파블로 로써 사장(크라이슬러 코리아), 타케히코 키쿠치 사장(한국닛산) 등이 대표적이다. 그야말로 한국인 사장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8년간 폭스바겐코리아를 이끌며 한국에 '골프 신화'를 만들어낸 박동훈 사장이 지난 19일 르노삼성자동차 영업본부장(부사장) 자리로 옮겼다는 공식 발표가 났다. 박 사장은 수입차 1세대로 한국에 수입차 성장을 주도해 온 인물이어서 그가 이직한 배경을 놓고 업계의 비상한 관심이 모아졌다.

박 사장은 폭스바겐 자동차의 한국 판매량을 재임 기간 동안 10배 가까이 늘려왔지만 막상 한국이 '돈벌이'가 되자 독일 본사와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엔 독일에서 온 최고재무책임자(CFO)가 한국법인을 전반적으로 통제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박 사장 후임 역시 외국인이다. 폭스바겐코리아 신임 사장엔 폭스바겐그룹 인도전략담당 임원으로 일해온 독일인 토마스 쿠엘 씨가 내정됐다. 이젠 BMW코리아를 빼면 주요 독일차 메이커의 사장은 모두 외국인으로 채워지게 됐다.

앞서 작년 6월엔 재규어 랜드로버 코리아를 이끌던 이동훈 사장이 회사를 떠나면서 데이비드 맥킨타이어 사장이 부임했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한국인 사장이 더 많았으나 시장 규모가 2배로 급증한 사이 외국인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앞으로 수입차 성장과 함께 외국인 CEO들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업계 종사자는 "한국닛산은 세계 각 지역의 법인마다 현지인 사장을 전략적으로 배치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일본인(타케히코 키쿠치 씨)이 사장직을 맡고 있다"고 귀띔했다.

현재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등록된 브랜드별로 재직 중인 한국인 CEO는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 정재희 사장(포드코리아), 정우영 사장(혼다코리아), 송승철 사장(푸조 수입원 한불모터스), 장재준 사장(GM코리아), 김철호 사장(볼보자동차코리아) 등이다. 한국인이 맡아온 일부 브랜드마저 철수하면서 한국인 사장 숫자는 줄었다.

이와 관련, 수입차협회 관계자는 "그동안 한국인 사장들이 수입차협회장을 맡았지만 외국인 협회장을 금지하는 제약은 없어 외국인이 협회장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사실 한국인이 한국 시장을 이끌어가는 게 사업 전략 측면에서 더 효과적일 수 있다"면서 "BMW코리아가 수입차 1위를 질주하는 데는 한국인 김효준 사장의 리더십도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한국에 생산공장도 없는 수입차 브랜드들이 '차만 팔고 돈만 벌어간다'는 말도 나온다. 한국 땅에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는 외국계 자동차 업체에 한국인들이 주도권을 빼앗기는 광경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경닷컴 김정훈 기자 lenn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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