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비주류 벽 넘다 보니 고개 숙이는 법 배웠죠"

입력 2013-08-22 16:59   수정 2013-08-23 15:40

그동안 '인사'에서 여러번 '물' 먹어 '무보직 명패' 보며 스스로 채찍질
行試 3차 면접서 떨어진 경험도

금감원 '저축銀 사태' 잊으면 안돼
금융회사, 해외서 살 길 찾아야…금감원 정보, 최대한 공개할 것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스스로를 '찌질이'라고 불렀다. 수차례 그렇게 표현했다. "찌질이가 세상에 눈을 떴다"거나 "찌질이가 여기까지 왔다"는 식이다. 과할 정도로 자신을 낮추는 어법과 상대가 누구든 허리를 굽히는 인사를 스스럼 없이 한다.


이런 처신은 사실 금융가에서 꽤 잘 알려져 있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다. 엘리트 의식으로 똘똘 뭉친 고위 관료의 전형과 사뭇 달라서다. 올 3월 ‘금융 검찰’로 불리는 금감원장직을 맡은 후에도 그의 스타일은 그대로다. 권위의식을 던졌지만 시장에서 느끼는 금감원장의 권위는 예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가볍지 않다. 유력 후보로 거론되던 인사들을 제치고 그가 새 정부 금융개혁의 적임자로 낙점된 이유일 것이다.

최 원장이 단골집으로 소개한 곳은 남도복집. 서울 여의도의 한 건물 지하에 있는 식당이다. 폼도 별로 안 나고 따로 칸막이도 없는 곳이다. 실내에 들어서자마자 격을 따지기 싫어하는 최 원장과 어딘지 닮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삼합 낙지숙회 해삼 멍게 홍어전 등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낙지숙회가 특히 쫄깃했다. 역시 음식 맛은 식당 분위기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뒤에 나온 복 맛도 일품이었다.

○비주류 경험 덕분에 다양한 시각 갖춰

그가 지난 3월 수석부원장에서 바로 금감원장에 임명된 것은 이례적이었다. 금융권을 쥐락펴락 호령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른 그가 스스로를 ‘찌질이’로 표현하는 이유는 오랜 ‘비주류’ 경험 때문이다.

고시 합격부터 드라마 같았다. 최 원장은 행정고시 24회 때도 1, 2차 시험을 통과했다. 하지만 학생운동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3차 최종 면접에서 고배를 마셨다.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을 딛고 대학 졸업 전에 이뤄낸 성취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아들의 합격 소식을 온 동네에 자랑하며 잔치를 벌였던 어머니는 몸져 누웠다. 이듬해 25회 시험을 다시 봐 최종 합격했다. 최 원장은 “나는 결국 통과했는데, 나처럼 3차에서 학생운동 경력 때문에 탈락한 사람이 몇 년 전 연락을 해왔다. 20여년 만에 부당하게 탈락한 것을 구제받았다는 것이었다. 같이 소주 한잔 하며 축하했다”고 말했다. 그 장소가 바로 남도복집이다.

충남 예산 출신으로 서울대 생물교육과를 졸업한 그에겐 학연이나 지연도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서울대 출신이 웬 엄살’이냐며 갸우뚱할 수 있는 얘기를 하면서도 그는 진지했다. 최 원장은 “서울대 상대와 법대 출신들이 주류인 재무부에선 차라리 연대나 고대 상대 출신이 나았다”고 털어놨다.

인사에서도 여러 번 이른바 ‘물’을 먹었다. 청와대 등에 파견나가 있다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금융위원회로 돌아왔지만 6명의 국장 후보 중 유일하게 보직을 못 받았다. 그는 그때 받은 보직이 빠져 있는 ‘금융위원회 국장 최수현’이란 명패를 늘 곁에 둔다. 그 명패를 보면 번쩍 정신이 난다고 했다. “열심히 해야지, 정신 차려야지, 나태해지면 안 되지 하는 거죠.”

소주잔이 한 바퀴 돌았다. 최 원장이 문득 담배 한 대를 달라더니 입에 물었다. 동석자들이 라이터를 찾느라 부산을 떨자 “됐다”고 했다. “그냥 물고만 있으려는 거예요.” 수년 전 담배를 끊은 뒤 미련이 남으면 이렇게 달랜다는 설명이다. “지난 5년간 집에서 식사한 게 10번도 되지 않아요.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2008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전문위원으로 파견나갔을 때 그는 국회 수위들에게도 늘 밝게 인사했다. 뉴스를 찾아 헤매는 기자들처럼 아침마다 모든 정무위원 방을 한 바퀴 돌았다. 그렇게 ‘악바리’가 되자 그를 인정하는 이들이 늘었다.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으로, 금감원 수석부원장으로 승승장구한 배경이다. “한때 비주류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나만큼 금융을 모든 시각에서 다 본 사람이 없더군요. 청와대에서도 보고, 글로벌 금융시장 관점에서도 보고, 국회 관점에서도 봤습니다.”

○“금감원, 저축은행 잊으면 안 돼”

종업원을 부르더니 매운 청양고추를 따로 달라고 부탁했다. 매운 맛을 즐기는지 최 원장은 이후에도 ‘청양고추 리필’을 요청했다. 말이 빠른 그의 스타일과 어울렸다. 복어살에 계란물을 입혀 노릇하게 지져낸 전이 상에 올라왔다. 젓가락을 바쁘게 놀리며 최 원장은 지난 2년간 금감원이 겪은 큰 변화를 얘기했다. 저축은행 연쇄 영업정지 사태부터 꺼냈다. 2011년 1월 삼화저축은행을 시작으로 2월 부산저축은행을 거쳐 총 27곳이 문을 닫았다. 이 과정에서 금융회사 감독을 해야 할 금감원 직원의 비리가 드러나기도 했고, 몇 명이 목숨을 끊기도 했다.

2011년 3월 임명된 권혁세 전 금감원장은 대대적인 쇄신책을 들고 나왔다. 4급 이상 모든 직원이 부모를 포함해 재산공개를 하도록 했다. 금융회사 감사로 내려가는 관행도 일체 끊었다. 은행·증권·보험·저축은행 등 권역 간 교차인사를 실시했다. 이 일을 실제로 수행한 사람이 바로 당시 수석부원장이던 최 원장이다. 금감원 내부에선 ‘개혁의 기수’였던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최 원장은 “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대처는 잘한 거라고 생각한다”며 일축했다. “업무의 가장 기본인 직무윤리와 기강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는 젓가락을 멈추고 정색했다. “잊으면 절대로 안 됩니다. 저축은행 문제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금감원이 그걸 잊는 순간 자만에 빠지는 거예요.” 실제로 저축은행 사태는 금융소비자 보호를 금융감독의 화두로 떠오르게 했고,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 설립 문제로 연결된다. 금감원을 쪼개 기능과 조직을 일부 금소원으로 이전해야 한다. 금감원장으로서의 견해를 물었지만, 민감한 사안이어선지 답이 짧았다. “그 문제에 관계 없이 우리는 최선을 다하는 거지요.”

금융회사들은 요즘 죽을 맛이다. 저금리와 불황 등이 겹쳐 은행, 증권, 보험, 저축은행, 모든 업권에서 수익성이 크게 나빠져서다. 최 원장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졌다. 그는 최근 금융지주회사 회장단과 간담회를 했다. “은행권의 분기당 순이익이 총 2조4000억원에서 1조1000억원으로 줄었습니다. 앞으로 더 나빠질 수 있어요. 지난 10년간 분기당 순이익이 1조원에 못 미친 적이 7번 있었는데, 그게 2003년 카드 사태와 2008년 금융위기 때입니다. 지금 금융회사들이 그 위기 때만큼 어려움을 겪는다는 뜻입니다.” 그는 “작년 봄부터 금융회사들에 해외 진출을 독려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라고 했다.

○“금융회사 해외에서 길 찾아야”

살이 도톰하게 오른 병어찜과 오징어 초무침이 추가로 나왔다. 매콤한 양념이 입에 착 붙는 병어찜이 젓가락을 자꾸 불러서 금세 뼈만 남았다. 최 원장이 문득 옆자리에 밀어 두고 있던 묵직한 가방을 끌어당기더니 서류철을 하나 꺼냈다. 삼성증권이 홍콩에서 손실을 본 것과 국민은행이 카자흐스탄에서 1조원 가까운 손해를 본 이유를 정리한 문서가 족히 50여페이지에 정리돼 있었다.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국내 금융사)는 해외에 안 나갈 수가 없어요. 국내 금융사 해외 점포가 363개인데 중국이 69개, 미국이 54개, 베트남이 40개입니다. 이 나라들 외에는 거의 없단 얘기예요. 아시아권만 해도 공략할 시장이 얼마나 많습니까.”

내친 김에 그의 가방을 슬쩍 들여다봤다. 그런 서류철이 13개나 됐다. 내용을 보지 않는 조건으로 제목만 일별했다. 가계부채 청문회 후속 조치, 자산운용산업 부실화 현황 및 대응 방안, 금융회사 해외 진출, 금융지주회사의 수익 문제, 저축은행 문제, 키코 문제, 경제 부진 등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가방은 얼추 10㎏은 돼 보였다. 헌법 전문을 담은 빨간 소책자는 자주 들여다봐서 손때가 묻어 있었고, 아이패드에도 온갖 보고서가 잔뜩 담겨 있었다. 의욕이 넘치는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밤중에도 일어나서 자료를 봅니다. 이런 저런 현안에 마음이 쓰여서 자다가도 생각이 나요.”

○“금감원 가진 정보, 가급적 공개할 것”

마지막은 얼큰한 복매운탕. 신선한 복어살이 듬뿍 담겨 있었다. 배가 부른데도 시원한 국물에 자연히 밥을 한술 말았다. 최 원장은 금감원장으로서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굉장히 많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금감원에 모이는 금융정보 중 상당수를 그냥 틀어쥐고만 있었어요. 앞으로는 웬만한 정보는 외부에 공개해서 시장 참여자들이 빠르게 대처하는 데 활용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금융회사들에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도록 독려하겠다고도 했다. “고령자 대상 질병보험, 여행자 보험, 대학생 학자금 대출처럼 국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금융회사가 수익이 안 난다며 개발을 안 한 상품이 많습니다. 이런 상품 개발이 늘면 국민이 금감원의 역할을 좀 더 친근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최수현 원장의 단골집 여의도 '남도복집' 전라도 향토음식 전문점…다양한 복요리 '일품'

서울 여의도 유진빌딩 지하에 있는 남도복집은 전라도식 향토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다.

복집인 만큼 복국 복매운탕 복찜 복튀김 복전 등 복 메뉴가 다양하다. 홍어요리(홍어삼합 홍어찜 홍어전 홍어애탕), 낙지요리(연포탕 산낙지 낙지초무침 낙지찜) 등도 별미를 자랑한다. 계절에 따라 굴·참꼬막·매생이 등도 주문할 수 있다. 홍어삼합에 들어가는 묵은지는 전남 해남에서 수확한 배추로 담가 2년 동안 숙성했다. 짭짤한 감칠맛이 좋다.

복국이나 탕, 죽 등의 가격이 1만원 미만으로 비교적 저렴해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다.

참복지리와 탕은 2만5000원, 그냥 복지리와 탕은 1만9000원이다. 이 밖에 낙지비빔밥, 매생이굴국, 매생이복국, 홍어애탕 등 해남 특유의 요리를 적당한 값에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

이상은/류시훈 기자 selee@hankyung.com


▶ [한경과 맛있는 만남]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우린 영호남 커플…벽 깨고 화합해야 통일 쉬워져"
▶ [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언호 파주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 "책 안읽으면 창조경제고 뭐고 없어요"
▶ [한경과 맛있는 만남] 정우현 MPK그룹 회장 "내 꿈은 피자로 세계 1등 하는 것…'꾼' 으로 살고 싶어요"
▶ [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준경 KDI 원장 "KDI도 변해야…국가 아젠다 개발에 사활걸겠다"
▶ [한경과 맛있는 만남] 정유정 소설가 "선 굵은 소설 쓰니 '아저씨 독자' 다시 모이더군요"


[한국경제 구독신청] [온라인 기사구매] [한국경제 모바일 서비스]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