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안 전면 재검토해야" 19개 경제단체 한목소리 반발

입력 2013-08-22 17:03   수정 2013-08-22 22:24

상법 개정안 반대 확산

획일적 지배구조 강요…기업 경영권 위협
의결권 제한, 해외펀드가 이사회 장악할 수도





“사람 체형은 고려하지 않은 채 모두에게 똑같은 크기의 옷을 입도록 강요하는 건 말도 안 된다.”

경제단체들이 상법 개정안에 대해 일제히 반대 목소리를 냈다. 법무부가 지난달 입법예고한 상법 개정안이 주식회사의 근간을 뒤흔든다고 보고 사상 처음으로 19개 경제단체가 뭉쳤다. 이들은 “상법을 개정하지 말고 현행대로 두라”는 내용의 건의서를 주무 부처인 법무부에 제출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소 등 19개 경제단체는 22일 서울 여의도 KT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무부에 상법 개정안을 전면 재검토해달라고 요청한 배경 등을 밝혔다.

경제단체들은 “상법 개정안은 개별 기업의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획일적인 지배구조를 받아들이도록 하고 있다”며 “이대로 두면 기업의 경영권이 농락당하고 국가 경제도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감사위원을 이사와 분리 선출하면서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규정은 경영권을 크게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현행 상법에는 의결권 제한 없이 이사를 먼저 뽑은 뒤 이사 중 일부를 감사위원으로 선출할 때만 대주주 의결권을 3%로 묶고 있다. 반면 개정안에선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한 뒤 감사를 먼저 선출하고 이들에게 이사 지위도 부여한다. 결국 최대주주는 손발이 묶이고 해외 펀드가 이사회를 장악할 수 있게 된다는 게 경제단체들의 견해다.

이날 공동 건의문을 낭독한 박찬호 전경련 전무는 “해외 펀드는 이른바 ‘지분 쪼개기’를 통해 3% 의결권 제한 규정을 피해갈 수 있고 펀드끼리 규합해 이사를 선임할 수 있다”며 “해당 기업은 설비 투자할 돈을 경영권 방어에 쓸 수밖에 없어 국가 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전무는 소버린과 SK의 경영권 분쟁, 칼 아이칸과 KT&G 간 대립을 대표적 예로 꼽았다. 당시 경영권 방어에 쓴 돈은 SK 1조원, KT&G 2조8000억원이었다.

경제단체들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집행임원제를 의무화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목했다. 경제단체들은 “집행임원제를 선택한 소니가 이사회 중심인 도요타, 캐논에 비해 지배구조가 우수하다고 할 수 없고 경영 성과가 더 좋다는 보장도 없다”며 “세계 어느 나라도 의무화하지 않은 집행임원제를 검증도 하지 않고 강제 도입하려는 것은 기업을 대상으로 위험한 실험을 하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집중투표제도 “주주 평등과 다수결 원칙에 위배된다”며 의무 조항이 아닌 선택 사항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상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집중투표제는 1주 1표를 원칙으로 하는 주식회사의 근간을 흔드는 것으로 다른 어떤 규제보다 강하다”고 비판했다. 3% 의결권 제한 규정에 대해서도 “내각을 구성할 때 집권당의 투표권을 제한하거나 감사원장이 제 역할을 못했다고 해서 다시 임명할 때 여당 야당 모두 의결권을 3%로 묶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 본부장은 “기업 지배구조를 강제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민주주의 국가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어서 19개 경제단체가 처음으로 한목소리를 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같이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협회들과 시간을 갖고 의견을 모았으면 참여 단체 수는 더 늘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건의에는 전경련과 대한상의를 비롯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전국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금융투자협회 여신금융협회 대한건설협회 한국석유화학협회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한국시멘트협회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한국제지연합회 등 19개 단체가 참여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

■ 집중투표제

두 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주주들에게 보유한 주식 수에 선출할 이사 수만큼을 곱한 의결권을 준 뒤 특정 이사 후보자에게 집중적으로 표를 줄 수 있게 한 제도. 이사를 뽑을 때 소액 주주의 의견을 관철시킬 수 있다.

■ 집행임원제
의사 결정과 감독 기능을 하는 이사회와 별도로 업무 집행만 전담하는 임원을 두는 제도. 이 제도가 시행되면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는 겸임할 수 없다.

■ 다중대표소송

모회사 주주가 불법 행위를 한 자회사 혹은 손자회사 임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낼 수 있는 제도. 자회사 지분을 50% 넘게 보유한 모회사 주주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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