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말까지만 해도 미인의 기준은 ‘풍만형’이었다. 르누아르와 루벤스 그림 속의 여인도 그렇다. 이 기준은 19세기 들어 ‘모래시계형’으로 확 바뀌었다. 가슴과 엉덩이는 풍만하되 허리는 가는 모습이었다. 20세기 초에는 마른 체형이 부상하더니 급기야 깡마른 ‘빼빼로형’까지 등장했다. 그 사이에 다이어트 열풍이 세계를 휩쓸었고 비만은 만병의 근원으로 꼽혔다. 관련 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비만의 기준은 1997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BMI라는 체질량 지수(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다. 20~25는 정상, 26~30은 과체중, 30을 넘으면 비만으로 분류한다. 체격이 작은 아시아인은 23 이상을 과체중으로 보고, 25 이상만 되면 비만으로 친다. ‘BMI가 높을수록 병에 잘 걸리고 사망률도 높다’는 게 정설이다.
그런데 이런 통념을 뒤집는 연구결과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올해 초 미국 국가보건통계청이 288만명의 비만도와 27만건의 사망 사례를 비교한 결과 과체중인 사람이 정상 범위보다 먼저 사망할 확률이 6% 낮다고 발표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연구팀도 당뇨환자 2600여명을 9~28년간 추적했더니 과체중·비만 환자가 더 오래 살았고 사망률도 절반에 불과했다는 결과를 내놨다. 연령이나 혈압, 혈중 지방, 흡연 등의 위험 요인을 고려해도 마찬가지였다.
심장병에 걸려도 뚱뚱한 사람이 더 잘 이겨내고 오래 산다고 한다. 지방세포들이 때로는 환자를 보호하기 때문에 뚱뚱한 사람이 병과 싸우는 힘도 더 세다는 얘기다. 간간이 거론되던 ‘비만의 역설’이 곳곳에서 입증되고 있다. 지난 5월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가 “BMI는 대충 만든 지표”라고 비판한 데 이어, 사이언스까지 “현실적인 지표가 필요하다”고 지적하자 논란은 더 뜨거워졌다. 체중 중 근육량은 얼마인지, 지방이 단순 피하지방인지 내장지방인지 세세하게 분석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물론 비만을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문제는 비만과 건강의 관계를 과대 포장해서 불안을 조성하고 사회를 질병공포증에 빠뜨리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폴 캄포스 미국 콜로라도대 교수도 미국 사회의 ‘어리석은 공포’ 뒤에는 제약과 의료계의 탐욕이 도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혈압 기준을 1900년대 초 ‘160, 100 이상’에서 1974년 ‘140, 90’으로 바꾸자 환자가 3배 늘었던 사례도 비슷하다. 2003년 ‘130~139, 85~89’로 더 낮춘 뒤엔 10배나 급증했다. 업자들이 공포마케팅으로 챙긴 돈은 그보다 더 불어났고…. 하긴 배후세력이 늘 문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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