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르릉"
비행기 엔진에 불이 났다는 경고음이 울린다. 재빨리 엔진 소화기 버튼을 누르고 30초를 센다. 30초가 지나고도 불이 꺼지지 않자 소화기를 한 번 더 작동시킨다. 엔진 당 장착된 소화기는 두 대뿐. 두 번째 소화기로 불이 꺼지지 않으면 곧 착륙을 시도해야한다. 설상가상으로 착륙 공항은 잇단 사고로 악명 높은 샌프란시스코 공항이다.
심장이 내려앉을만한 비상 상황이지만 안심해도 좋다. 비행기 조종을 실제와 가깝게 훈련할 수 있는 시뮬레이터이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인천 중구 대한항공 운항훈련원에서 보잉747 시뮬레이터를 체험해봤다.
시뮬레이터 조종석에 앉자 바다에 맞닿은 샌프란시스코 공항이 눈앞에 펼쳐진다. 주위를 빼곡히 둘러싼 수백개의 버튼과 계기판들도 실제 조종석과 판박이다. 내부 뿐 아니라 동체의 움직임을 그대로 구현하기 때문에 느낌은 더욱 생생하다. 방향 전환과 가속도, 고도 변화에 따른 흔들림까지 전달한다.
움직임에 익숙해질 때쯤 컨트롤 휠(핸들)을 잡자 긴장감이 몰려온다. 착륙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 머지않았기 때문이다. 활주로가 시야에 들어오고 고도 2000피트(약 600m)에 도달하자 동승한 윤영흠 기장의 지시가 쏟아진다.
"착륙 바퀴를 내리고 비행경로 모니터와 전방을 함께 보세요. 비행경로를 유도하는 십자 선(Flight Director)에 맞춰 컨트롤 휠(핸들)을 움직여야 합니다. 지면에 도달하면 두 발로 브레이크를 꾹 밟으세요."
그러나 맘처럼 되는 건 없다. 십자선과 비행기는 따로 움직이고 고도를 서서히 낮추는 것도 쉽지 않다. 가까스로 착륙하나 싶더니 '쿠쿵' 소리와 함께 지면에 닿은 충격이 전해진다. 승객들이 깜짝 놀랄만한 하드 랜딩(hard landing)이다.
이번엔 구름이 잔뜩 낀 인천 공항에 야간 착륙을 시도했다. 날씨 탓에 확보된 시야는 20~30m에 불과하다. 그나마 보이는 건 활주로 불빛이 전부다. 하드랜딩의 충격이 떠올라 비행기가 자동으로 운항하도록 오토 파일럿을 작동시킨다. 비행기는 착륙해야 할 지점에서 나오는 전파를 탐지해 알아서 부드럽게 착지한다.
시뮬레이터는 평범한 상황에서 비행하는 법이 없다. 항공기 결함, 최악의 기상 조건, 반대편에서 날아오는 비행기, 착륙이 까다로운 공항까지. 가상 조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IOS(Instructor Operating System)를 통해 실제 비행에서 부딪히기 어려운 상황까지 구현한다.
시뮬레이터가 조종사들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모는 건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비상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송호섭 대한항공 운항훈련원 운용팀장은 "조종사들은 1년에 두 번씩 시뮬레이터 교육을 받고 극단적인 상황에서 비행하는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며 "이 테스트에 3번 이상 떨어질 경우 조종사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몰려드는 훈련 수요로 총 8대의 시뮬레이터는 매달 한 번씩 정비받을 때를 제외하곤 24시간 가동된다. 첨단 장비의 총체인 만큼 200억원에 달하는 고가 장비이기 때문에 가동률을 높일 필요도 있다.
송 팀장은 "정비에 드는 부품 값만 매년 7억원이 소요되는 등 시뮬레이터 운영에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며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든 안전한 운항을 책임질 수 있는 조종사를 육성하기 위해 꼭 필요한 시설"이라고 강조했다.
인천=한경닷컴 최유리 기자 now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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