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모질고도 고단한 삶이다. 아들이 귀한 집안의 일곱 번째 딸로 태어나 아들보다 먼저 나왔다고 해서 이‘선녀(先女)’란 이름을 달았다. 신랑 얼굴도 못 보고 결혼했는데 남편은 다리가 불편한 몸에 열등감 투성이다. 끊임없이 아내를 의심하고 때린다.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4남매를 키우지만 자식 복도 없다.
맏딸은 다단계 판매에 빠져 큰 빚을 지고,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을 견디다 못해 이혼한다. 집을 팔아가며 혼수를 마련해 의사에게 시집 보낸 막내 딸은 정작 바리바리 먹을 것을 싸들고 찾아오는 엄마를 창피해 하고 구박한다. 착실한 첫째 아들은 데모판에 휩쓸려 목숨을 잃고 밖으로 떠돌던 둘째 아들은 엄마를 때리던 아빠에게 반항하다 집을 나가버린다.
서울 대학로 아트센터K 네모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선녀씨 이야기’는 자신의 꿈을 접고 남편과 자식들의 뒷바라지에 모든 것을 바친 어머니의 이야기다. ‘선녀씨’의 삶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기구하고 극적이다. 소설과 드라마, 영화, 연극 등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숱하게 다뤄진 ‘헌신과 희생의 삶을 산 우리 시대 어머니들’의 종합판과도 같다. 자칫 식상하고 지루하게 느껴지거나 감상적으로 흐를 수 있는 내용이지만 연극은 그렇지 않다. 100여분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속도감 있고 재미있게 흘러간다.
이 작품의 대본을 쓰고 직접 연출한 이삼우 연출가(극단 예도 대표)는 다양한 연극적 장치와 무대 기법, 적절한 웃음 코드를 동원해 이야기를 능수능란하게 풀어간다. 극의 템포를 완숙하게 조절하며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 능력이 탁월하다.
무대는 선녀씨의 장례식장. 15년 만에 돌아온 둘째 아들 종우가 영정 사진을 쳐다보며 “선녀씨”라고 부르자, 영정 속 선녀씨가 걸어 나와 아들 옆에 털썩 주저앉고는 “니하고 한잔하고 갈란다. 엄마 살아온 얘기 들어볼래?”라고 말한다. 극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풀기 위해 두 명의 선녀씨를 등장시킨다. 젊은 선녀씨는 이재은, 중년 이상부터는 고수희가 연기한다. 두 명의 선녀씨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극을 진행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간섭하기도 한다. 어릴 적 아이들의 모습은 인형으로 그려진다. 정감이 넘치고 재치 있다.
경남 거제에서 활동하는 극단 예도가 만든 이 작품은 지난해 광주에서 열린 전국연극제에서 작품상 연출상 희곡상 연기상 등을 휩쓸었다. 이번 서울 공연에서는 오디션을 통해 모든 출연진을 새로 캐스팅했다. 두 명의 선녀씨인 고수희와 이재은을 비롯해 진선규 한갑수 이혜미 신지현 등이 그야말로 열연한다. 길지 않은 기간임에도 배우들의 몰입을 이끌어내고 좋은 호흡을 만들어낸 연출가의 솜씨가 놀랍다. 지방 연극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다. 내달 15일까지, 5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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