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품질 하락은 국내 시장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최근 해외 주력 시장인 미국에서도 현대차의 품질 점수가 하락하면서 정몽구 회장이 강조해 온 '품질 경영'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지적이다.
1999년 취임한 정 회장은 2000년대 들어 회사의 최우선 가치로 '품질 경영'을 선포했다. 미국 시장에서 제값을 받으려면 품질을 높이고 고급화 하는 전략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신차가 나올 때마다 직접 꼼꼼히 체크하기도 했다. 올 초 신년사에서도 다시 한 번 품질경영을 언급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올 초 미국 소비자 잡지 컨슈머리포트가 집계한 '2013년 자동차 브랜드 평가'에서 전체 26개 브랜드 중 14위에 그치며 작년 순위보다 3계단 떨어졌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JD파워가 발표한 '초기품질조사(IQS)'와 '내구품질조사(VDS)'에서도 지난 1~2년 사이 업계 평균치를 밑도는 등 인지도가 크게 하락했다.
더욱이 올해 자동차 수요가 급증한 미국 시장에서 판매 증가율이 둔화된 것도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달까지 GM(제너럴모터스), 도요타, 혼다 등 경쟁 업체들은 모두 두 자릿수 판매 증가율을 기록했으나 현대·기아차는 2.5% 증가한 것에 그쳤다.
상반기 중 역대 최다인 187만대 리콜, 작년 말 연비 과장 소송, 노조 파업에 따른 생산차질 등 악재가 겹치면서 핵심 시장인 미국 내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각에선 현대차가 품질을 최우선으로 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철 산업연구원 주력산업팀장은 "최근 1~2년 간은 경쟁 업체들이 현대차보다 품질 경쟁력을 높였다"면서 "이들이 품질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신속하게 대응 조치를 취한 것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인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GM, 포드 등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불과 3~4건의 차량 결함이 발견된 사례만 있어도 해당 문제와 연관돼 있는 차량 수십 만대를 한꺼번에 리콜하고 있다.
실제 포드자동차는 최근 연료탱크에서 기름이 새는 문제로 즉각적인 리콜 조치에 나서 위기를 넘겼다. 이스케이프, 토러스 등 일부 차량에서 휘발유 냄새가 나거나 기름 방울이 땅에 떨어진 것이 리콜의 발단이 됐다. 그 결과 포드는 약 46만대에 이르는 차량을 리콜했다. 화재나 충돌 등의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위험 경고만으로 리콜 결정을 내린 것이다.
2010년 전세계 1000만대가 넘는 대규모 리콜 사태를 겪었던 도요타 역시 지난해 과감한 리콜 조치로 소비자의 신뢰를 얻었다. 도요타는 캠리 등 일부 차종에서 파워윈도우 스위치의 과열 시 화재나 연기가 발생한다는 30건의 신고가 접수되자 700만대가 넘는 차량에 한해 리콜 결정을 내렸다. 조사 결과 화재는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지만, 운전자 안전을 위해 리콜을 택한 결과다.
이처럼 차량 결함이 발견된 후 대처하는 방법에 따라 소비자 신뢰도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유럽이나 미국 업체들의 경우 리콜 사안이 발생하면 소비자 보호를 위해 적극적인 대처에 나선다. 특히 2010년 도요타 리콜 사태 이후 각국 정부의 리콜 관련 조사와 규제는 대폭 강화되는 추세다.
최근 미적대던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우회적으로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의 품질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2일 열린 자동차·부품업계 사장단 간담회에서 "자동차 품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는 높아지고 있는데 실내 결로(이슬맺힘) 현상과 빗물누수, 연비과장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품질 향상과 리콜, 무상수리에 대한 선제적 대응에 신경 써 달라"고 주문했다.
김필수 교수는 "리콜 여부를 결정하는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철저히 소비자 중심이어서 업체들은 품질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리콜을 하게 돼 있다"면서 "제작사 편들기에 급급한 정부가 선진국의 정책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품질 불량은 메이커의 대처가 안이하면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 이미지 문제와 직결된다"고 덧붙였다.
한경닷컴 김정훈 기자/최유리 기자 lenn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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