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집단위·지원방식도 일관성 없어…혼란 가중
“일생이 걸린 문제인데 한 번의 시험으로 결정한다는 게 말이 되나.”
199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1년에 두 차례 치르기로 결정하기 이전 시험 횟수를 늘리자는 요구가 이처럼 빗발쳤다. 성적이 우수하지만 시험 당일 컨디션이 나빴거나 답안지를 밀려 표기하는 등의 실수로 시험을 망친 학생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대입 국가고사를 1년에 두 차례 치르는 실험은 결국 한 해로 끝났지만 한국 사회에서 대학입시 결과가 한 사람의 평생을 좌우한다는 인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대입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치러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성화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정부는 학생들을 볼모로 해마다 새로운 실험을 했다. 교육부 고위 관계자는 “기존 제도에 만족하는 학부모들은 아무 소리를 하지 않지만 불만을 가진 학부모들은 거세게 정부를 비난하니까 어떻게든 대입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부담에 시달렸다”고 토로했다.
◆대학별 시험 허용·폐지 수없이 반복
대입 제도의 변화는 학생을 대학이 자율로 선발하느냐, 정부 주도 아래 통일된 기준으로 뽑느냐를 놓고 끊임없이 갈등한 결과이기도 하다. 해방 이후 가장 먼저 등장한 대입 제도는 대학별 입학시험으로 1953학년도까지 이어졌다. 초기에는 지원자가 절대 부족해 정원미달이 속출했으나 몇 년 후 자율권을 악용한 정원초과 현상이 나타났고 무자격자에 대한 입학허가 남발 등 입시부정이 판을 쳤다.
정부는 이 같은 병폐를 막기 위해 1954년 대학별 고사 전에 일종의 자격시험인 국가연합고사를 실시했지만 ‘권력층 인사 자녀가 연합고사에 떨어졌다’는 소문이 떠돈다는 이유로 그해 시험결과가 백지화되는 해프닝을 겪었다. 5·16 군사정부 등장 이후에는 대학에 대한 사회 불신을 없애려는 쇄신책으로 대입자격 국가고시제(1962~1963학년도)가 도입됐으나 이 또한 2년 만에 폐지됐다.
국가주도 대입시험이 제대로 정착한 시기는 대학정원 관리를 바로잡는다는 명목으로 대학입학 예비고사와 대학별 본고사를 도입한 1969학년도였다. 그러나 대학들이 국어·영어·수학 본고사를 어렵게 출제하면서 고액 과외가 성행하는 결과를 빚었고, 정부는 1980학년도부터 본고사를 폐지하고 1982학년도엔 학력고사 성적과 내신만으로 선발하도록 했다. 학력고사가 단순암기력만 측정한다는 비판으로 1988학년도부터 대학별 논술이 도입됐지만 이것도 2년 만에 흐지부지됐다.
1994학년도엔 통합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실시되고 대학별 고사가 다시 허용됐지만 국영수 중심의 지필고사가 고액과외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3년 만에 대학별 고사가 또 폐지됐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대학들이 성적 좋은 학생만 뽑으려는 풍토도 문제지만 정부가 대학의 자율성을 없애고 통제만 하려는 것도 잦은 입시 변경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입시제도 오락가락
대입 국가시험도 거의 매년 부분적으로 변경됐다. 학력고사 과 목수가 차츰 늘면서 1986학년도에는 인문계의 경우 17개 과목을 풀어야 했다. 수능 체제에서도 외국어 듣기 문항을 늘리거나 표준점수를 도입하는 등 변경이 잦았고 2008학년도부터 도입된 수능등급제도 1년 만에 폐지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1945년 이후 단과대별로 모집했다가 1966학년도부터 학과제로 바뀌는 등 그동안 7차례나 모집단위가 바뀌었다. 적성에 대해 잘 모르는 수험생들이 대학에 입학해 1년여 교양과정을 통해 폭넓게 사고하도록 돕자는 측과 비인기학과에는 학생이 가지 않으려 해 기초학문을 살리기 위해서는 학과별로 모집해야 한다는 측이 치열하게 치고받은 결과다.
‘선지원 후시험’이냐 ‘선시험 후지원’이냐도 논란거리였다. 선시험 후지원은 1982학년도 도입됐지만 경쟁률이 낮은 곳으로 수험생이 몰리는 ‘눈치 작전’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1988학년도 다시 선지원 후시험으로 환원됐다.
이희범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사무총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입정책이 바뀌었지만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된 적은 거의 없다”며 “학생과 학부모들은 대입제도 변경의 실험대상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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