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공단이 국내외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 등 법적 조치를 취하기로 한 것은 흡연에 따른 각종 질병으로 인해 발생하는 공단의 진료비 부담에 대해 원인 제공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소송을 통해 사회적으로 담배의 위험성을 알리고 흡연율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도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부처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실제 소송을 제기하기까지는 적잖은 진통도 예상된다.
○“소송 명분 확보했다”
김종대 건보공단 이사장은 27일 세미나에서 “흡연으로 인해 증가하는 의료비는 건강보험이 책임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모든 건강보험 가입자가 담배로 인한 추가 보험료를 내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2011년 한 해만 흡연으로 인해 발생한 질병 치료에 쓰인 진료비 지출은 1조6914억원에 달했다는 설명이다.
건보공단이 소송에 앞서 흡연과 각종 질병의 연관성을 밝히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날 연세대와 건보공단이 공동으로 연구해 발표한 130만명에 대한 추적조사가 그 결과물이다. 김 이사장은 “이번 연구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흡연과 각종 질병의 관계를 통계적으로 밝혀낸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소송에서 이기려면 담배회사가 어떤 위법을 저질렀는지를 밝혀내야 한다. 앞서 국가와 담배회사를 상대로 폐암 사망자 유가족 등이 제기한 소송에서도 법원은 담배회사의 위법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건보공단은 지난 4월부터 법무팀을 중심으로 전문 변호사들을 초빙해 수개월간 강의를 들어가며 승소 가능성 등을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주정부는 이겼다
소송가액이 얼마가 될지는 지금으로서 추정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한 해 진료비를 감안하면 최소한 수조원대에 달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소송가액을 추산하기 위해서는 건보가 승소 가능성을 판단하는 데 살펴본 미국 소송사례를 참고할 만 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 저소득층의 의료비를 부담한 주정부들이 담배 회사를 상대로 대거 소송에 나섰다. “담배회사가 수십년간 흡연의 위험성, 발암성, 니코틴 중독성 등을 은폐하고 부인해온 만큼 진료비를 부담하라”는 논리였다.
담배회사들은 전국적으로 소송에 휘말리자 ‘합의불가 원칙’을 포기했다. 1998년 미시시피주 등 4개주는 담배회사들과 34억달러-145억달러의 합의금을 받아냈다. 이어 1998년 11월에는 46개 주정부가 필립모리스 등 4개 담배회사로부터 25년간 2060억달러의 배상금을 받기로 하는 합의에 이르기도 했다.
법무법인 남산의 정미화 변호사는 “개인들이 담배회사의 위법성을 밝혀내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건보공단이 담배회사와 비슷한 힘으로 맞붙게 되면 미국처럼 중간에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정부 내 분위기는 부정적
복지부는 현재 소송과 관련해 “구체적인 논의를 하지 않아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내부적으로 기획재정부와의 관계가 복잡하게 꼬일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복지부가 생각하는 가장 강력한 금연정책은 담배가격 인상이다. 기재부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송에 동의하는 것은 일을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지금까지 진행된 담배 관련 소송에서 기재부가 사실상 피고로 돼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담배사업법을 관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부 산하기관이 기재부를 상대로 소송하는 것을 지원 또는 방치할 경우 기재부와의 각종 협의 때 엄청난 장애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복지부의 판단이다. 따라서 이런 정부 내 관계가 정리돼야 소송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편 KT&G 측은 “담배회사는 위법행위를 하지 않았다”며 “건보공단이 구상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라고 밝혔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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