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비의 드라마틱한 삶 역사적 관점서 접근
명성황후만큼 역사적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인물도 드물다. ‘조선의 마지막 국모’로서 열강에 항거한 철의 여인으로 추앙받기도 하지만 외척 인척 내척 등 성이 다른 친족 세력의 사리사욕 채우기에 급급해 나라를 망친 인물로 평가받기도 한다.
명성황후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최근 독일과 영국에서 1895년 을미사변 당시 그가 시해되지 않고 살았다는 내용의 외교 문서가 추가로 발견되면서 시해 여부에 대한 진실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명성황후 생존설’에 바탕을 둔 대형 창작 가무극이 제작돼 공연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연단체인 서울예술단이 내달 22~29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올리는 ‘잃어버린 얼굴 1895’(사진)다. 그동안 윤호진 연출, 에이콤 제작의 뮤지컬 ‘명성황후’를 비롯해 TV 드라마와 연극 등에서 명성왕후의 드라마틱한 삶이 숱하게 다뤄졌지만 생존에 초점을 맞춘 극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대표적 여성 극작가인 장성희 씨가 대본과 가사를 쓰고, 한국에서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연출 기법을 가장 잘 활용하는 뮤지컬 연출가로 평가받는 이지나 씨가 연출과 각색을 맡았다. 가무극은 크게 뮤지컬에 들어가는 장르로 무용의 독립적인 비중이 높은 게 특징이다.
극작은 명성황후로 판명난 사진이 한 장도 없는 곳에서 출발했다. 명성황후로 추정된 사진 속 인물은 궁녀로 밝혀졌고 몇몇 사진을 두고도 진위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고종은 사진 찍기를 좋아해 꽤 많은 사진이 남아 있는데 부인의 사진은 없는 것일까.
장 작가는 “단 한 장의 사진도 남기지 않은 명성황후를 자신의 운명의 얼굴을 스스로 만들고자 했던 여인으로 그렸다”며 “그의 ‘잃어버린 얼굴’을 찾는 여정을 미스터리한 이야기로 풀어냈다”고 소개했다. 그는 “명성황후는 우리 역사라는 몸 속에 일종의 결절로 남아 있는 어떤 부분”이라며 “이 얽히고 꼬인 부분을 들여다보고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극은 ‘사진 미스터리’와 ‘생존설’을 연결시킨다. 1945년 해방 직후 낡은 사진관을 배경으로 현재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는 과거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극에는 명성황후와 고종, 민영익, 대원군 등 역사적 인물과 함께 가상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궁정 사진사 조수로 극중 화자인 휘와 그의 연인으로 명성황후의 곁을 그림자처럼 지키는 무녀 선화, ‘민비 암살’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황후의 얼굴 사진을 구하려 애쓰는 일본인 기자 기무치 등이다.
휘와 선화의 사랑이 긴박한 역사적 현장과 맞물린다. 결국 선화는 황후 대신 죽음을 맞는다. 이지나 연출가는 “명성황후에 대한 영웅적인 해석을 지양하고 천의 얼굴을 가진 존재 그대로 무대 위에 올려 놓을 것”이라며 “‘미스터리 판타지’ 형식으로 어떤 작품보다도 현대적이고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음악은 히트 뮤지컬 ‘빨래’를 작곡한 민찬홍 씨, 안무는 정혜진 서울예술단 예술감독이 맡는다. 주인공인 명성황후 역에 차지연, 휘 역에 손승원이 캐스팅됐다. 나머지 배역과 앙상블, 무용 등은 서울예술단 단원들이 맡는다. 고종 역으로 박영수, 김옥균 역으로 김도빈, 선화 역으로 김건혜 등이 출연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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