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흔히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한다. 멀리 보고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뜻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상황은 정반대다. 1969학년도에 예비고사가 도입된 이후 대학 입학 제도의 평균 수명은 1.2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입 제도의 잦은 변경은 수험생과 학부모를 혼란에 빠뜨리고 공교육에 대한 불신만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26일 한국경제신문이 교육업체 이투스청솔과 함께 연도별 대입 제도 변화를 분석한 결과 1969학년도에 예비고사를 치른 이후 올해 입시(2014학년도)까지 46년간 38회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1.2년에 한 번꼴로 새로운 대입 제도가 시행됐다는 의미다.
#본고사→학력고사→수능
대입 제도가 가장 자주 바뀐 것은 대입 국가고사였다. 예비고사는 1969학년도에 시작해 1981학년도까지 13년간 이어지다 1982학년도부터 학력고사로 바뀌었다. 1994년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체제로 바뀌었지만 올해 입시(2014학년도)에서 A·B형 수준별 수능을 도입하는 등 거의 매년 부분적인 제도 변경이 잇따랐다.
“일생이 걸린 문제인데 한 번의 시험으로 결정한다는 게 말이 되나.”
199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1년에 두 차례 치르기로 결정하기 이전 시험 횟수를 늘리자는 요구가 이처럼 빗발쳤다. 성적이 우수하지만 시험 당일 컨디션이 나빴거나 답안지를 밀려 표기하는 등의 실수로 시험을 망친 학생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대입 국가고사를 1년에 두 차례 치르는 실험은 결국 한 해로 끝났지만 한국 사회에서 대학입시 결과가 한 사람의 평생을 좌우한다는 인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대입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치러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성화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정부는 학생들을 볼모로 해마다 새로운 실험을 했다. 교육부 고위 관계자는 “기존 제도에 만족하는 학부모들은 아무 소리를 하지 않지만 불만을 가진 학부모들은 거세게 정부를 비난하니까 어떻게든 대입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부담에 시달렸다”고 토로했다.
#대학별 시험 허용·폐지 반복
대학별로 치르는 시험도 수시로 바뀌었다. 1969학년도부터는 예비고사와 함께 대학별 본고사를 치렀지만 1981학년도에는 본고사가 폐지됐다. 1986학년도부터 논술이 대학별로 치러지는 등 대학별 고사가 부활했다가 2년 만에 논술이 없어졌고 국어·영어·수학 중심의 학교별 지필고사가 1994학년도에 다시 생겼다가 3년 만에 폐지되는 등 끊임없이 오락가락했다. 오종운 이투스청솔 평가이사는 “입시 제도의 타당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즉흥적으로 바꾸다 보니 교육 정책 신뢰가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사교육 의존도만 높여 왔다”고 말했다.
대입 제도의 변화는 학생을 대학이 자율로 선발하느냐, 정부 주도 아래 통일된 기준으로 뽑느냐를 놓고 끊임없이 갈등한 결과이기도 하다. 해방 이후 가장 먼저 등장한 대입 제도는 대학별 입학시험으로 1953학년도까지 이어졌다. 초기에는 지원자가 절대 부족해 정원 미달이 속출했으나 몇 년 후 자율권을 악용한 정원초과 현상이 나타났고 무자격자에 대한 입학 허가 남발 등 입시부정이 판을 쳤다.
정부는 이 같은 병폐를 막기 위해 1954년 대학별 고사 전에 일종의 자격시험인 국가연합고사를 실시했지만 ‘권력층 인사 자녀가 연합고사에 떨어졌다’는 소문이 떠돈다는 이유로 그해 시험 결과가 백지화되는 해프닝을 겪었다. 국가주도 대입시험이 제대로 정착한 시기는 대학정원 관리를 바로잡는다는 명목으로 대학입학 예비고사와 대학별 본고사를 도입한 1969학년도였다. 그러나 대학들이 국어·영어·수학 본고사를 어렵게 출제하면서 고액 과외가 성행하는 결과를 빚었고, 정부는 1980학년도부터 본고사를 폐지하고 1982학년도엔 학력고사 성적과 내신만으로 선발하도록 했다. 1994학년도엔 통합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실시되고 대학별 고사가 다시 허용됐지만 국·영·수 중심의 지필고사가 고액과외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3년 만에 대학별 고사가 또 폐지됐다.
#오락가락 입시…수험생 골탕
대입 국가시험도 거의 매년 부분적으로 변경됐다. 학력고사 과목 수가 차츰 늘면서 1986학년도에는 인문계의 경우 17개 과목을 풀어야 했다. 수능 체제에서도 외국어 듣기 문항을 늘리거나 표준점수를 도입하는 등 변경이 잦았고 2008학년도부터 도입된 수능등급제도 1년 만에 폐지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1945년 이후 단과대별로 모집했다가 1966학년도부터 학과제로 바뀌는 등 그동안 7차례나 모집단위가 바뀌었다. 적성에 대해 잘 모르는 수험생들이 대학에 입학해 1년여 교양과정을 통해 폭넓게 사고하도록 돕자는 측과 비인기학과에는 학생이 가지 않으려 해 기초학문을 살리기 위해서는 학과별로 모집해야 한다는 측이 치열하게 치고받은 결과다. ‘선지원 후시험’이냐 ‘선시험 후지원’이냐도 논란거리였다. 선시험 후지원은 1981학년도 도입됐지만 경쟁률이 낮은 곳으로 수험생이 몰리는 ‘눈치 작전’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1988학년도 다시 선지원 후시험으로 환원됐다.
정태웅/강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radae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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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평가? 절대평가?…내신도 눈치작전
대입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논술 등 대학별 고사 못지않게 당락에 영향을 미치는 주된 요소는 고교 내신(학생부)이다.
내신을 어떻게 반영하느냐를 놓고 그동안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사이에서 오락가락을 반복했다. 상대평가는 학생 간 비교를 통해 순위(등급)를 매기는 방식이고 절대평가는 개별 학생들이 도달한 학업성취를 기준으로 수·우·미·양·가 등으로 평가하는 방식이다.
내신을 대입에 반영하기 시작한 1955~1979학년도까지는 대학이 자율적으로 반영했다. 그러나 본고사가 폐지된 1980학년도 인문계와 자연계가 분리되면서 상대평가에 따른 10등급 종합등급제가 도입됐다. 학력고사 체제에서도 15등급제는 유지됐으나 동급생 사이에서 경쟁이 가열되는 등 비교육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됨에 따라 1994학년도 수능체제로 개편하면서 과목별 절대평가제와 석차제를 병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정부는 그러나 절대평가제에서 상당수 학교들이 학생들에게 좋은 성적을 주는 ‘내신 부풀리기’가 성행하자 다시 선택형 수능인 2005학년도부터 과목별 9등급 상대평가제를 도입했다. 상대평가가 실시되자 또다시 과열 경쟁이 빚어진 데다 외국어고 등 에선 실력이 있어도 내신성적이 좋지 않아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불만이 제기되면서 정부는 절대평가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2011년 중1부터 순차적으로 절대평가제를 도입해 2017학년도부터 대입 내신에도 반영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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