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비·경제성은 TOP…내년부터 단종 ㅠㅠ
“아가씨, 이렇게 남의 차를 막 세워 두라고 하면 어떡해?”
시승차가 주차장에 도착한 날. 경비실 아저씨가 전화를 걸어 짜증을 냈다. “주말 동안 타려고 빌린 차예요”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거짓말 하지마!”라고 버럭 화를 내는 게 아닌가. 퇴근 후에야 아저씨의 심정을 이해했다. 쉐보레 광고와 영업사원 전화번호 스티커가 요란하게 붙은 경트럭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GM의 경트럭 라보(사진)가 단종된다는 소식을 듣고 수소문한 끝에 겨우 차를 구했다. 쉐보레 영등포대리점의 박종석 차장(41)이 지난 3월 구입해 3500㎞가량 주행한 롱카고 모델이다. 이 화려한 영업용 트럭을 몰고 불타는 금요일 밤 홍대 일대를 누볐다. 오랜만에 스마트 키가 아닌 ‘돌리는’ 열쇠로 차 문을 열자 ‘클래식’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꿉꿉한 차 냄새가 스멀스멀 풍겼다. 1990년대로 돌아온 것 같다.
차 안을 둘러보니 ‘이게 뭔가’ 싶다. 시동을 걸자 ‘팟팟츠르륵탈탈탈’ 하는 소리가 지하 주차장에 울려 퍼졌다. 시동은 금방 걸린다.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가면 자동으로 시트 마사지 기능이 작동한다. 부지런한 차다. 부르르 떨리는 시트가 등과 엉덩이를 시원하게 두드려줬다.
라디오는 지상에서도 지지직거린다. 실용성이 제일인 경트럭에 옵션을 말해 무엇하랴. 에어컨 하나는 럭셔리 세단 부럽지 않다. 온 힘을 다해 냉매를 얼굴에 마구 뿜어주는데 1분만 지나면 춥다. 물론 지정 온도를 맞춰주는 게 아니라 강약 조절만 된다.
후륜 구동(뒷바퀴 굴림)에 수동 5단 변속기를 단 라보는 경제성 면에서는 단연 최고다. 796㏄ LPG 엔진을 장착했고 복합연비는 9.8㎞/ℓ다. 연료가 바닥난 상태에서 가득 채우는 데 3만원 정도밖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취득·등록세가 면제되고 고속도로 통행료와 주차비 감면 혜택도 받을 수 있다.
뒤칸 적재 공간도 넓다. 호떡 등 간단한 음식을 만드는 푸드 트럭으로 손색없다. 바퀴가 12인치로 작고 귀엽다. 차체 높이가 낮아 짐을 쉽게 실을 수 있다. 가격도 저렴하다. 일반형보다 전장(길이)이 260㎜ 긴 롱카고 모델은 796만~818만원. 2.5ℓ 디젤엔진을 얹은 트럭 포터의 절반 수준이다.
아쉬운 점은 튼튼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약골’이라는 것. 경차 스파크 LPG(최고출력 65마력, 최대토크 9.3㎏·m)보다 약한 43마력, 6.7㎏·m이다. 오르막길은 엄두도 못 냈다. 수동 기어는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5분에 서너 번씩 시동을 꺼뜨리는 바람에 진땀을 뺐다. ‘반클러치’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그래도 세탁소, 택배, 꽃집을 하는 자영업자들에게 이만한 효자가 없다. 주문하면 출고까지 한 달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소상공인들이 단종을 막아 달라는 청원까지 냈지만 수익이 나지 않는 차종인 탓에 계속 생산하긴 어렵다고 한다. 다마스와 함께 내년부터 단종된다. 널 타볼 수 있어서 행운이었어. 굿바이, 라보.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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