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세가 대표적…6000억 세금 반환 불러
경제민주화 '과잉 입법' 에 심판청구 늘듯
9월1일 출범 25주년을 맞는 헌법재판소가 그동안 위헌 결정을 내린 법률 네 개 중 세 개는 경제 관련 법률인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적 자유와 기본권을 침해하는 법률의 입법이 많았던 데 따른 결과라는 것이 법조계의 분석이다. 경제민주화 분위기를 타고 최근에도 위헌 소지가 있는 경제 법안의 졸속 입법이 잇따르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위헌 법률 4개 중 3개는 경제 관련
한국경제신문이 헌재 설립 이듬해인 1989년부터 지난 20일까지 위헌 결정이 난 법률(조항)을 전수 조사한 결과 311개 중 194개가 조세, 노동, 연금 등 경제 관련 법률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같은 기간 헌법 불합치(위헌 소지가 있으나 법률 공백을 막기 위해 관련 법 개정 때까지 현행 법률을 유지) 결정이 난 법률도 총 93개 중 경제 관련이 47개로 절반을 넘었다.
헌재에 따르면 출범 이래 2000년대 초반까지는 재판 과정의 인권 침해 등 정치·사회적 기본권과 관련한 결정이 많았다. 법관 판단 없이 보호감호를 할 수 있도록 한 옛 사회보호법 5조, 법원의 보석 결정 시 검찰이 불복해 즉시 항고할 수 있게 한 옛 형사소송법 97조 3항에 대한 위헌 결정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경제가 고도화되고 이에 대한 정부의 규제도 늘면서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경제 관련 위헌법률심판 사건이 증가했다. 특히 국가의 권리를 개인의 재산권보다 우선하거나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데 대해 위헌이라고 본 사례가 많았다. 헌재가 해당 법률을 무효화시키면서 경제적으로 큰 파장을 낳기도 했다. 2008년 종합부동산세의 세대별 합산 과세 조항에 대한 위헌 결정으로 수천억원의 환급 사태가 일어난 게 대표적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2006년(12만명)과 2007년(16만명) 종부세를 낸 납세자들에게 6000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돌려줬다. 앞서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해 도입한 토지초과이득세 부과 조항과 특별·광역시 내 택지 소유 상한제 역시 1994년과 1999년 잇달아 위헌 판정을 받으면서 부동산시장에 파장이 일었다.
2000년대 말에는 피고용인이 저지른 불법 행위 때문에 기업이나 사업주도 함께 처벌받도록 하는 ‘양벌 규정’ 수십건이 잇단 위헌 결정을 받기도 했다.
또 △행정수도 이전을 위한 신행정수도특별법 △개인, 기업의 담보권보다 국세 지방세를 우선 징수하도록 한 조항 △부모 빚을 자녀가 무조건 물려받게 한 조항 △주식을 가장 많이 소유하거나 법인의 경영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에게 2차 납세 의무를 지우게 한 조항 △부동산 임대소득 과세에 대해 가족 중 일부가 연대 책임지도록 한 조항 등이 위헌 결정을 받으면서 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경제민주화 바람에 위헌 법률 더 늘 듯
헌재에 따르면 1988년 접수된 위헌 심판 사건은 39건에 그쳤으나 이듬해부터 1995년까지 매년 300~500건을 기록했다. 이후 2003년에는 1100건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1700여건에 달했다. 경제 관련 법률에 대한 위헌 심판 제청도 덩달아 증가하는 추세다. 헌재 측은 “조세, 부동산, 기업 활동 등 경제적 권리와 관련된 법률이 많다”며 “특히 노동계에 메가톤급 파장을 불러올 만한 사건도 상당수 계류돼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헌재는 파견 및 기간제 근로자 보호법 등 고용 규제에 대해 공개 변론을 진행했고, 다음달에는 ‘통상임금’ 법률에 대한 공개 변론도 앞두고 있다. 헌재 결정에 따라 연간 수십조원에 달하는 기업의 추가 부담 여부가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위헌 소지가 있는 경제 법안들이 별다른 제동 없이 잇달아 국회를 통과하고 있어 헌재의 심사 대상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호영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소기업 등 소위 ‘을’을 보호하기 위해 새로 만든 공정거래법 유통법 하도급법 등이 오히려 기업의 자유를 침해하고 사회 복리를 저해하는 경우도 많다”며 “위헌 소지가 다분한데도 입법가들의 정치논리에 이끌려 졸속 입법돼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헌재 관계자는 “매년 위헌(법률) 심판 제청이 증가해 결정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탓에 개인과 기업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며 “입법 과정에서 철저한 위헌 소지 검토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소람/양병훈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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