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月 300여명 '불로초 주사' 의료관광 떠난다

입력 2013-08-30 17:39   수정 2013-08-30 22:55

줄기세포 원정시술 '러시'…中·日관광 겸한 2박3일 코스 성행

퇴행성 질환 치료·미용 목적 '인기'…한국서 줄기세포 공수해가 시술
1회 1000만원…매월 300명 떠나

국내선 '의약품' 규정해 승인 깐깐…임상시험 4~5년후 안정성 인정받아야




지난 5월 일본 후쿠오카 신칸센 하카다역에서 도보로 2분 거리의 지쿠시구치클리닉. 1층 접수실에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노부부 두 쌍이 긴 소파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들의 손에는 한글로 적힌 줄기세포치료에 대한 설명서가 들려 있었다. 서울 양재동에서 온 김모씨(70) 부부는 지난해부터 1년 동안 이곳에서 줄기세포 치료를 네 차례 받았다. 국내 병원에서 자신의 성체줄기세포를 추출해 배양한 뒤 치료 날짜를 잡고 찾은 것이다. 배양 줄기세포는 급속 냉동용기에 실려 따로 비행기로 공수했다. 동행한 지인 부부들도 비슷한 시기에 국내 모 병원장의 소개로 이곳을 알게 됐다고 했다. 김씨는 “아픈 허리가 병원을 다녀도 잘 안 나아 일본으로 줄기세포 척추시술을 받으러 다녔는데 효과를 봤다”며 “안사람도 피부 주름살 제거 시술을 받으러 데리고 다닌다”고 전했다. 그는 “지인 중에도 관광 겸 줄기세포 치료를 받으러 일본이나 중국을 오가는 경우가 제법 있다”고 덧붙였다.

젊음을 되찾고 장수를 보장받기 위해 해외원정 줄기세포 치료 관광이 정치인 고위공직자 자영업자 등 고소득 노년층 사이에 성행하고 있다. 30일 서울 강남성형외과 업계에 따르면 의료관광 형태의 고객 모집과 함께 친분을 쌓아온 의사를 지인으로 두고 있는 사모임을 통해 음성적으로 떠나는 해외원정이 두드러지고 있다. 강남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국내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해 배양하는 고객들의 목적은 대부분 해외원정 줄기세포치료”라며 “해외로 나가는 인원은 매달 300명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불로초’ 찾아 떠나는 해외 원정

이들은 노화로 인한 퇴행성 질병 치료나 나이보다 젊어 보이려는 미용 목적으로 시술이 금지된 국내를 떠나 해외에서 치료를 받고 들어오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강남 성형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한 바이오벤처업체가 일본 후쿠오카의 피부과병원을 통해 국내 품목 허가를 받지 않은 줄기세포를 한국인에게 투여하면서 문제가 불거진 이후 최근 중국 베트남 등지로 줄기세포 해외시술 루트가 확대되고 있다. 강남권 일부 대형성형외과를 중심으로 중국 베이징·옌타이, 일본 후쿠오카 등지에 한국인들을 초청해 시술받는 사례는 월 평균 300~500건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용자는 정치인, 고위공직자, 재계인사, 연예인 등이 적잖은 것으로 알려졌다.

줄기세포 치료는 생명윤리 논쟁이 끊이지 않는 배아줄기세포 치료와 달리 제대혈(탯줄 혈액)이나 자신의 골수·혈액 등에서 추출한 성체줄기세포를 배양해 외국 병원에서 주사를 맞는 것이다. 1억~2억셀(cell)의 줄기세포배양액이 들어가는 주사 한 대를 맞는 비용은 500만~1000만원으로, 일년에 평균 네 차례 받는다.

한 성형외과 관계자는 “줄기세포 시술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며 “국내에서 희망자를 모집해 베이징 옌타이 옌지 등으로 2박3일 관광을 가면서 줄기세포시술도 함께 받도록 알선하고 있다”고 전했다. 줄기세포시술은 피부관리 및 면역력 강화 등에 효능이 있다고 소문나면서 강남권 부유층 사이에선 ‘불로초 주사’로 통한다.

압구정동 A성형외과 원장은 “줄기세포는 심근경색, 뇌경색, 척수손상, 무릎연골결손, 피부질환 등에 다양하게 쓰여진다”며 “국내에서 품목허가를 받지 않아도 해외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시술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고 말했다. 국내 약사법에 따르면 무허가 의약품을 제조하거나 판매(약사법 제31조 위반)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국내에서 허가받지 않은 줄기세포를 배양해 환자에게 투여했다면 약사법 위반이 분명하지만 해외에서 배양하고 투여했다면 국내법 적용이 어렵다”고 말했다.

○4~5년 걸리는 국내 임상시험…해외선 바로 치료

줄기세포 원정시술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국내에서 사실상 줄기세포 치료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법상 줄기세포치료는 ‘의약품’으로 규정된다. 줄기세포를 자신의 몸에서 추출해 그냥 주입하는 것은 합법이다. 하지만 자기 몸에서 채취한 줄기세포라도 이를 배양해 의료 목적으로 사용하려면 의약품인 만큼 법에 따른 임상시험 절차를 거쳐 안정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문제는 줄기세포 임상시험 기간이 4~5년가량 소요된다는 점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고소득층에는 지병을 쉽게 고칠 수 있고 젊음을 되찾을 수 있는 치료를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에서 합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데 굳이 안정성을 이유로 4년 이상을 기다려 치료할 까닭이 없다. 희귀병을 앓고 있거나 병세가 빠르게 나빠지는 치매 등에 걸린 환자들은 어쩔 수 없이 해외로 내몰리고 있는 형국이다.

서인환 한국장애인재단 사무총장은 “해외에서 시술을 받고 돌아온 장애인만 2만8000여명에 이른다”며 “규제가 심한 국내를 피해 해외에서 시술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꾸준히 상담받으러 오고 있다”고 말했다. 서 총장은 “국내에선 합법적으로 시행이 어려워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까닭에 줄기세포시술은 각종 의료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임상 횟수만 줄여도 ‘원정 치료’ 막는다

전문가들 사이에도 줄기세포 치료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임상시험 과정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에 대해선 큰 이견이 없었다. 현재 국내에서 줄기세포치료를 허가받으려면 4~5년이 소요된다. 후보물질을 추출한 뒤 동물 실험을 거치고 이후 식약청에 임상시험을 신청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후 세 차례의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식약청에서 다시 허가를 받는 구조다. 세 차례의 임상시험은 안전성(1상)-약효 여부(2상)-약효확증(3상) 단계로 진행된다.

전문가들이 줄기세포 치료에서 간소화하자는 것이 약효를 확증하는 3상 단계다. 2상 시험에서 약효까지 검증되면 치료가 급한 희귀병 환자들에게 이를 허용하고 3상 시험은 동시에 진행하자는 의견이다. 이럴 경우 1~2년 가까이 단축된다.

줄기세포치료제를 만드는 메디포스트 관계자는 “부작용을 감안하면 줄기세포를 의사 판단하에 무작정 시술한다는 것은 부담스런 측면이 있다”며 “희귀병을 지정해 3상 시험을 생략하거나 조건부 승인을 내주는 방식으로 치료기간을 줄인다면 치료 수요도 충족시키고 안정성도 보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유헌 한국뇌연구원장은 “기초적인 안전 및 효능검증 후 바로 치료에 적용토록 법이 개정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반면 문신용 서울대 의대 교수는 “기능이 과장되게 알려진 부분도 있어 줄기세포의 안전성이 검증되기 전까지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동민/이준혁/김태호 기자 gmkd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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