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살다간 최욱경의 예술혼

입력 2013-09-02 17:21   수정 2013-09-05 18:09

40대에 요절…한국적 추상표현주의 개척자
내일부터 가나아트갤러리에서 100여점 선봬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폭음을 자주 했던 추상화가 최욱경 화백(1940~1985). 1985년 7월 그는 과음 후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인한 심장발작으로 세상을 떠났다. 최 화백은 현대 추상미술 유파 가운데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처음으로 도입한 작가로 명성이 높다. 그의 그림 ‘학동마을’은 2010년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전군표 전 국세청장 부인에게 인사 청탁 대가로 건넸다는 의혹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45년 동안 치열한 삶을 살다 간 최 화백의 회고전이 4일부터 오는 25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에서 펼쳐진다. 서울에서 태어난 최 화백은 서울대 미대 졸업 후 1963년 미국으로 건너가 크랜브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에서 수학했다. 김기창 김흥수 화백에게서 그림을 배웠고, 대담하고 화려한 색과 분방한 필치로 자연의 생명력과 여성의 정체성을 녹여낸 독창적 작업세계를 구축했다.

이번 전시에는 인체 드로잉 50점을 비롯해 자화상, 콜라주 작품, 흑백 풍경화, 흑백 추상화, 유화 등 미공개 작품 100여점이 출품됐다.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적극 수용하면서 끊임없는 실험과 시도를 통해 이를 한국적 미감으로 체화시킨 최 화백의 작품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전시장은 40대에 요절한 여성 작가의 열정과 예술 혼을 뿜어낸다. 자유로운 필치의 인체 드로잉 작품은 자신 안에 내재된 여성성의 일면을 드러낸다. 갸름한 얼굴에 비해 목이나 상체를 투박하게 처리해 외양과 내면의 정신세계, 동양과 서양, 빛과 어둠, 사랑과 증오, 행복과 고뇌, 참과 거짓 등 대립되는 양극의 두 세계를 포착하려 했다. 추상환상주의 장르를 개척한 미국 화가 조지아 오키프(1887~1986)의 회화와 비견되는 까닭이다.

이미경 미술평론가는 “앞쪽으로 목을 길게 내민 것은 마치 천 겹으로 색칠한 영혼의 소리를 들으려는 구도자의 자세처럼 느껴져 작가가 추구하는 예술세계를 짐작하게 한다”고 말했다.

콜라주와 텍스트 등이 다양하게 삽입된 작품들은 당시 유행했던 팝아트, 추상미술 등 미술 사조와 시사적 문제에 대한 관심이 많았음을 보여준다. 또 먹으로 그린 그림이나 붓글씨가 곁들여진 작품에서는 단순한 정체성 고민의 차원이 아닌 한국적인 것에서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하려 했던 흔적이 엿보인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옥경 가나아트갤러리 대표는 “짧은 생을 살며 모든 에너지를 발산한 최 화백의 작품은 작가적 열정과 현실 사이에서 오는 괴리, 또 그로 인한 고독과 외로움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다”며 “생전에 작업한 1000여점이 넘는 그의 작품에서는 기만적인 자기 복제나 자기 표현에 대해 주저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02)720-102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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