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선 지루하게 상품설명서만 읽는데…
쇼핑·엔터테인먼트 결합…한국 홈쇼핑 '나홀로 성장'
각국서 "노하우 알려달라"…합작 진출 제의도 '봇물'
서울 방배동 CJ오쇼핑 스튜디오엔 요즘 외국인들의 발길이 잦다. 지난달엔 베트남 방송국 관계자들이 이곳에 3주일 이상 모습을 나타내기도 했다. GS샵 현대홈쇼핑 등에도 유럽 등 외국 방송 관계자들이 부쩍 늘어났다. 한국의 ‘잘나가는 홈쇼핑’을 연구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다.
한국의 올해 홈쇼핑 시장 규모는 8조6000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4년 전(4조5000억원)보다 두 배가량 커졌다. 양대 홈쇼핑업체 중 하나인 CJ오쇼핑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코스닥 상장기업 중 가장 많은 1206억원(연결기준)을 기록했다. GS샵은 739억원의 영업이익을 내 44.7%의 증가세를 보였다. 국내 홈쇼핑의 이 같은 성장세는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내 경기 침체와 외국 홈쇼핑산업의 정체 속에서 ‘나홀로 성장’을 지속하고 있어서다.
한국의 홈쇼핑이 미국 등 해외 홈쇼핑과 가장 차별되는 것은 오락적 요소를 가진 버라이어티 쇼 같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쇼핑과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해 ‘쇼퍼테인먼트’라고 부르고 있다. 미국의 대표 홈쇼핑 채널인 QVC가 24시간 내내 상품 설명서를 반복해서 읽어주는 것과 달리 한국 홈쇼핑에서는 직접 제품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라는 것. 뿐만 아니라 직접 음식을 만들고, 쇼호스트가 시청자들과 문자로 상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최근에는 상품 판매를 하지 않는 트렌드 분석 방송까지 나왔다. 지난달 26일 방송한 CJ오쇼핑의 ‘오 패션 가을·겨울 프리론칭쇼’에서는 류재영 쇼호스트와 한혜연 스타일리스트가 가을과 겨울시즌 패션 트렌드를 한 시간 동안 설명했다. 6억원가량의 매출을 포기하고 트렌드를 소개한 것이다. 임호섭 CJ오쇼핑 방송제작팀장은 “이번 방송에는 동일 시간 타사 방송 대비 9배 많은 사람이 시청했다”며 “홈쇼핑이 상품의 트렌드를 읽는 방송이라는 인식이 확산한 결과”라고 평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쇼호스트들 중엔 1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스타도 즐비하다. 현대홈쇼핑의 해외명품 잡화 방송인 ‘클럽 노블레스’를 담당하는 김동은 쇼호스트는 지난 한 해 동안 1600억원어치를 판매했다. 지난달 초 해외 명품 잡화 특별전에 출연한 날에는 10억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명품의 값이 비싸기도 하지만, 김동은 쇼호스트의 차분한 진행이 신뢰감을 줘 매출이 예상보다 크게 늘어났다는 평이다. 서경환 현대홈쇼핑 쇼호스트는 캐스터 출신으로 제품 설명을 간단 명료하게 전달해야 하는 주방용품 전문 쇼호스트다. 올해 7월 휴롬원액기를 두 차례 판매해 11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국 홈쇼핑의 성공 스토리가 알려지면서 해외에서 한국형 모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31일에는 GS샵의 터키 홈쇼핑인 MNG숍의 서르한 PD가 한국을 방문해 한국형 홈쇼핑을 배워 갔다. 서르한 PD는 GS샵의 ‘쇼 미 더 트렌드(show me the trend)’ 방송을 현장에서 지켜본 뒤 “생방송 중 시청자들이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며 참여하는 역동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이런 형태로 터키에서 방송하는 것을 기획해 봐야겠다”고 말했다. 베트남 VTC그룹 등은 롯데홈쇼핑 방송센터를 방문해 홈쇼핑 프로그램 제작 노하우를 배우고 돌아가기도 했다. 미국의 생활용품 회사인 프록터앤드갬블(P&G)은 지난 5월 GS샵의 허태수 사장 등을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본사로 초청해 한국 홈쇼핑의 급성장에 대해 토론회를 갖기도 했다.
이해선 CJ오쇼핑 대표는 “전반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한국 홈쇼핑이 잘나가는 것에 대해 외국업계가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다”며 “합작을 하자는 제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어 한국 홈쇼핑의 해외 진출이 크게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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