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 전력수급, 관리를 위해
시장형 공기업 지정 해제해야"
임승빈 명지대 교수·행정학·前한국정책과학학회장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냉방병이라는 말이 있었다. 과도한 냉방으로 한여름에 긴 소매 옷을 입은 사람을 종종 볼 수 있었고, 절전이 아닌 건강을 위해 에어컨 사용 자제를 당부하곤 했다. 올 여름엔 어디나 에어컨 바람을 쐬기가 쉽지 않았다. 정부는 온도 제한과 냉방 개문 영업을 단속했고, 국민은 선풍기와 부채로 폭염을 이겨야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원전 비리 소식과 수급불안, 블랙아웃(대정전) 우려에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원전 비리, 전력 공급 부족에다 낮은 요금으로 인한 전력 과소비, 밀양 송전탑 갈등 등 전력산업 문제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전력산업 문제를 심화시킨 원인 중 하나는 발전회사의 시장형 공기업 지정으로 전력산업 역량을 분산시킨 것이다. 정부는 2011년 6개의 발전회사를 시장형 공기업으로 지정했다. 시장형 공기업은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해 일정 요건을 갖춘 공기업 중 경쟁과 효율을 목적으로 지정되는 공공기관의 한 유형으로, 정부가 직접 경영 관리, 감독을 담당하게 된다. 그러나 정부의 관리 감독은 전문성과 전력산업 특징에 대한 고려 부족에 따른 한계가 있다. 시장형 공기업 지정 이후 한국수력원자력을 비롯한 발전회사들의 수익성 위주 경영은 수급 안정을 비롯한 전력산업 공동의 문제에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를 야기했다.
공급 확대는 한계가 있고, 낮은 전기요금 탓에 비정상적으로 증가한 수요를 억제하는 것도 쉽지 않다. 수요 감소 노력과 함께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효율적인 수급관리 체계 확립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한국전력을 중심으로 한 발전회사의 협업이 이뤄져야 한다. 발전과 송배전 간의 연계와 경영 협력을 강화해, 발전회사는 발전원가 절감과 안정적인 설비운영에 전력을 다하며, 한전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함께 전체 산업의 효율을 증진시키기 위한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구조로 가는 것이 옳다. 거래소와 발전회사, 한전의 정보 공유 부족과 의사결정이 분산된 현 체계로는 수급비상 상황에서의 신속한 대응도 곤란하다. 한전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해 효율적인 전력수급 관리 체계를 회복시켜야 한다. 시장형 공기업 지정으로 각 회사들이 수익 추구에만 관심을 모으는 지금 상황은 전력공급의 불안을 더할 뿐이다.
원전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점입가경이다. 원전은 각종 조작과 불량부품 사용으로 더 이상 신뢰받을 수 없게 됐다. 잦은 설비 고장도 간과할 수 없다. 원전 고장으로 인한 정지시간은 2010년 50시간에서 2011년 1074시간, 2012년 2773시간으로 대폭 늘어났다. 정부가 발전회사를 시장형 공기업으로 지정해 경쟁과 수익 위주의 평가를 시작한 때가 2011년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원자력 기술 위주의 폐쇄 조직으로 굳어진 한수원의 비리와 고장을 누구도 책임지고 견제, 조정할 수 없다. 시장형 공기업 지정은 한전의 한수원에 대한 경영참여와 품질관리 등의 관리감독 권한을 제한시켰고, 이로 인해 조직의 폐쇄성과 도덕적 해이가 심화됐다. 한전의 전문적인 감사기능을 활용하고, 정보와 인적 교류 등을 활성화하는 것이 폐쇄적인 원전 문화 해체와 투명하고 안정적인 원전 운영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다.
전력산업의 문제해결을 위해 장기적으로는 정확한 수급계획을 통해 전력산업을 안정화시키고, 단기적으로는 정부, 한전, 발전회사 모두의 힘을 모아야 한다. 그 첫걸음으로 경쟁과 수익 위주의 발전회사 시장형 공기업 지정 해제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단절된 한전과 발전회사 간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함으로써 안정적인 전력 생산과 공급에 집중하고, 시너지를 활용해 해외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 한전의 종합적인 부채관리로 한전과 발전회사들의 재무적 안정성을 갖추고, 발전원가 절감 노력을 통해 전기요금 인상 요인을 줄일 수도 있다. 국민을 더 이상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
임승빈 < 명지대 교수·행정학·前한국정책과학학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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