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축제공화국] '재정난' 지자체, 축제엔 돈 펑펑…서울·진주시 베끼기 다툼도

입력 2013-09-04 17:06   수정 2013-09-05 04:14

뉴스 추적

한해 2500개'홍수'…지원 예산 2594억원
인구 3만8000명 괴산군, 13개나 개최
유채꽃 행사 10곳…콘텐츠 부실 심각




#1. 5일부터 8일까지 제13회 ‘괴산고추축제’가 열리는 충북 괴산군. 이번 축제엔 고추직거래 장터와 함께 다문화 고추 아줌마 선발대회, 전국 임꺽정 선발대회 등이 열린다. 소요 예산은 6억5200만원. 인구 3만8000여명의 괴산군에서 해마다 열리는 축제는 고추축제를 포함해 13개나 된다. 전국 시·군·구 단위로는 가장 많다. 전체 축제 예산만 7억5000만원에 달한다. 안전행정부 관계자는 “시·군·구의 연간 가용예산이 100억원 남짓인 점을 감안하면 10%가량이 축제에 쓰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2. 제주도에선 매년 4월 중순 ‘유채꽃큰잔치’가 열린다. 제주도 특용작물인 유채꽃을 널리 알려 지역 소득을 올리자는 취지로 1983년 시작됐다. 올해 전국에서 열리는 유채꽃축제는 제주를 제외하고 서울 구리 수원 삼척 태백 등 10개가 넘는다.

전국 곳곳에서 축제가 넘쳐나고 있다. 연간 2400여개에 이른다. 하루 7개꼴로 축제가 열리는 셈이다. 대부분의 지역축제는 부실한 콘텐츠와 홍보 부족, 유사 축제 남발 등으로 경제적 효과가 떨어지고 예산만 낭비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도시보다 시·군에 집중

4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올해 초 지방자치단체들이 공식 통보한 지역 축제는 모두 752개다. 상대적으로 예산이 적게 드는 소규모 축제는 제외한 수치다. 이재영 새누리당 의원(경기 평택을)이 문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열린 축제는 2429개, 축제에 지원된 정부와 지자체 예산은 2594억원으로 나타났다. 소요 예산의 60% 이상인 1595억원은 재정 상황이 열악한 기초 지자체들이 부담했다.

축제를 지원하는 지자체들은 지역 이름을 내걸고 열리는 축제를 통해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하고, 지역 상권을 살리려는 취지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축제는 광역지자체인 대도시보다 시·군에서 열리는 경우가 많다. 실제 경남·경북(283개)과 전남·전북(232개)에서 열리는 축제 숫자는 대구(72개), 인천(60개), 대전(40개), 광주(35개) 등 광역시를 훨씬 웃돈다. 괴산군(13개)을 비롯해 충남 서천(12개), 전남 장흥, 경북 울진(각 11곳) 등이 축제가 많은 지자체다.

◆넘치는 축제에 낭비되는 예산

내실 없는 지역 축제가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예산 낭비도 두드러지고 있다. 2429개 축제 중 문체부가 올해 공식 문화관광축제로 지정한 축제는 1.7%인 42개에 불과하다. 지자체장들이 표를 의식해 세금으로 무분별하게 축제를 열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방선거 1년 전께 새 축제를 마련하는 사례가 많다”고 털어놨다. 공직선거법 86조에 따르면 지자체장은 선거일로부터 60일 전부터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사를 열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고추축제가 열리는 괴산군 괴산청결고추유통센터엔 2005년 설치된 초대형 가마솥이 전시돼 있다. 둘레 17.85m, 지름 5.68m, 높이 2.2m, 무게 43.5t 규모로 쌀 50가마의 밥을 지을 수 있는 크기다. 기네스북 등재와 함께 고추축제 관람객 유치를 위해 2005년 5억6000만원을 들여 만들었다.

그러나 호주에 이보다 더 큰 질그릇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기네스북 등재를 포기했다. 가마솥이 워낙 커 밥이나 죽을 지을 수 없어 활용도 못 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축제 베끼기’ 논란 속 이전투구도

곳곳에선 ‘축제 베끼기’도 벌어지고 있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가을 전어철을 맞아 전국에서 열리는 전어축제는 보령, 부산, 광양, 서천, 장흥 등 5곳에 이른다.

‘겨울축제의 원조’로 불리는 강원도 ‘화천 산천어축제’를 모방한 얼음낚시 축제를 여는 지자체도 10곳이다. 산이 있는 지자체들에선 ‘철쭉제’ ‘억새제’ 등의 이름이 붙은 비슷한 명칭의 축제가 열린다.

최근 등(燈)축제를 놓고 벌어진 서울시와 진주시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진주시는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 때 쓰인 통신신호에서 유래한 남강유등을 발전시킨 지역 축제를 마련했다. 2000년부터 ‘진주남강유등축제’라는 명칭으로 행사를 열고 있다. 이 축제는 올해 ‘김제지평선축제’와 함께 문체부에서 대표 축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서울시가 2010~2012년 한국 방문의 해를 기념해 청계천 일대에서 등축제를 연 데 이어 이를 연례화하기로 결정하자 진주시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진주시는 “서울등축제는 프로그램이나 전시 형태가 진주남강유등축제를 베낀 짝퉁”이라며 서울등축제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진주시는 서울시 등축제 중단 활동에 나선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명목으로 최근 추가경정예산 7억원을 편성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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