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흔하디흔한 물고기의 이름이 하필 전어(錢魚)라니/ 손바닥만한 게 바다 속에서 은빛 비늘 파닥이는 모습이/ 어쩌면 물속에서 일렁이는 동전을 닮아 보이기도 했겠다” 김신용의 시 ‘전어’의 한 토막이다. 횟집 수족관마다 은빛 나는 가을 전어가 그득해지는 계절이다.
전어가 가을철 ‘국민생선’이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1980년대만 해도 전어는 산지인 3남(호남·영남·충청)에서 주로 먹었다. 1990년대 들어 운송·보존기술의 발달로 전국 어디서나 전어 굽는 냄새가 진동하게 됐다. 이제는 9월이면 온 국민이 전어를 꼭 맛봐야 한다는 강박증까지 생겼다는 게 음식평론가 황교익 씨의 촌평이다.
전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 실학자 서유구는 ‘임원경제지’(1827년)에서 서울의 양반, 서민 할 것 없이 소금에 절인 전어를 ‘돈(錢) 귀한 줄 모르고 먹는 생선’이라고 기록했다. 정약전은 ‘자산어보’(1814년)에서 모양새가 화살촉을 닮았다 하여 전어(箭魚)라고 썼다. 지역에 따라 새갈치, 엿사리, 전어사리 등으로 불리며 동해에선 어설키라고 한다.
봄철 도다리라면 가을에는 단연 전어다. 한자로 ‘가을 물고기’라는 뜻의 추어(鰍魚·미꾸라지)도 가을 전어에는 어림없다. 청어과의 난류성 어종인 전어는 봄에 북상해 7~8월 산란을 마친 뒤 9~10월이 한창 기름기가 오르고 살이 붙을 때다. 11월 중순 이후엔 뼈가 억세진다. 따라서 추석 전후 보름이 전어맛이 가장 좋은 시기다.
실제로 가을 전어는 기름기가 봄철의 3~4배에 달해 고소하기 그지 없다. 오죽하면 속담에 가을 전어 대가리엔 참깨가 서 말이라고 했다. 집 나간 며느리가 전어 굽는 냄새에 돌아온다지만, 며느리 친정 간 사이에 문 걸어잠그고 먹는다는 얌통맞은 속담도 있다. 제철이 지나면 쓸모 없다는 뜻으로 ‘물 넘은 전어’라고 비유한다.
전어는 길이가 15㎝ 이상 돼야 제맛이 난다. 뼈째 먹으면 같은 양의 우유보다 칼슘을 배 이상 섭취하는 셈이라고 한다. 살이 올라 20㎝ 이상인 전어는 ‘떡전어’라고 부르는데, 이때는 굽거나 뼈를 바르고 회를 떠 먹는다. 밤톨처럼 생겨 밤젓이라고 부르는 전어 창자는 젓갈로도 별미다. 머리 끝부터 꼬리까지 버릴 게 없다.
전어철을 맞아 보성, 섬진강, 삼천포항, 보령, 서천, 부산 등지에서 ‘전어 축제’가 한창이거나 곧 열린다. 올해 풍어여서 가격도 많이 내렸는데, 일본 방사능 우려 탓에 내해에서 잡은 전어까지 근거없이 외면 당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적조에 이어 방사능까지 어민들 시름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주말엔 전어구이와 회를 안주 삼아 소주 한잔 해야겠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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